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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심야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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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서울 연희동 골목에 밤에만 문을 여는 심야 책방이 있다. 간판부터 ‘밤의 서점’이다. 영업시간은 오후 5시(월요일은 7시)부터 밤 10시까지다. 은은한 조명 속의 책방 풍경이 평화롭다. 책마다 점장의 추천 문구가 붙어 있어 더욱 정겹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주로 20대 학생과 30대 직장인들이다.

매주 금요일 밤을 새우는 서점도 있다. 서울 논현동의 ‘북티크’에는 밤 10시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이들은 각자 책을 골라 읽다가 새벽 2시가 되면 모여 앉아 책 얘기를 나눈다. 이 ‘이야기 모임’은 심야 책방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작가와의 만남, 미니 콘서트도 자주 열린다.

이런 서점들은 골목이나 지하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입소문을 타고 단골 손님이 몰린다. 인천 구월동의 ‘말앤북스’에서는 특정 요일을 정해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첫차가 다닐 때까지 책과 함께 실컷 노는 ‘철야 번개’ 모임을 자주 갖는다.

서점이라고 책만 있는 건 아니다. 술을 마실 수 있는 곳도 많다. 연희동 ‘책바’와 마포 염리동의 ‘퇴근길 책 한잔’ 등은 맥주, 위스키, 와인과 함께 다양한 책의 향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충북 괴산의 ‘숲속 작은 책방’은 민박까지 가능한 북스테이형 서점이다. 주인의 애장도서를 밤새 읽으며 색다른 독서 체험을 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심야 책방 파티를 흔히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오픈 북’ 서점은 낮 영업을 마친 뒤 하룻밤 38유로(약 5만원)에 빌려준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밤새 독서·낭독 파티를 벌인다.

대형서점인 교보문고도 해마다 날을 잡아 1박2일 심야책방을 연다. 2016년 여름 일산점에서 진행한 2박3일 심야 책방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뒤 매년 진행하고 있다. 대만과 중국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서점도 있다. 타이베이 번화가의 청핀(誠品)서점 본점은 1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다. 최근엔 베이징과 상하이에도 24시간 서점이 등장했다.

‘2018 책의 해’를 맞아 전국의 동네 서점들이 오늘부터 매월 마지막 금요일 밤 심야 영업에 나선다. 참가 서점은 77곳. 연말까지 200곳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벤트도 다양하다. 용산의 ‘고요서사’는 미야자와 겐지의 《봄과 아수라》를 낭독한 뒤 소믈리에의 설명을 곁들여 책과 어울리는 와인을 마신다.

책은 ‘이성의 시간’인 낮보다 ‘감성의 시간’인 밤과 잘 어울린다. 캐나다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에서 목동들의 밤하늘 별자리 읽기를 독서의 기원으로 꼽는다. 별자리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면서 가축을 보살피는 지혜가 ‘밤하늘 읽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밤과 책은 한몸이다. 프랑스 속담에도 ‘밤이 가르침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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