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대 원하는 伊 포퓰리즘 정부
EC는 '위험한 선례' 우려하지만
매번 새 정부 좌절시키는 건 위험
배리 아이컨그린 < 美 UC버클리 교수 >
[ 추가영 기자 ] 대다수의 이탈리아인이 원하는 두 가지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과 유로화다. 문제는 둘 다 가질 수 있을지다.
첫 번째 요구인 새로운 리더십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탈리아의 두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 정당 ‘동맹’과 ‘오성운동’은 지난 총선에서 50% 이상을 득표하면서 상·하원 모두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득표 차는 크지 않지만 이번 선거에서 중도우파·중도좌파 정당이 33%의 의석만 겨우 지켜냈다는 것은 현 상황에 대한 (이탈리아 유권자의) 거부였다.
두 번째 요구는 덜 알려졌지만 첫 번째 요구보다 덜 논쟁적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이탈리아 국민의 60~72%가 유로화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단일 통화가 그들의 저축을 보호한다고 믿고, 일부는 유로화가 유럽연합(EU)의 창립멤버인 이탈리아의 국가적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여긴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 연정 파트너들은 연정 협상안에서, 그리고 각각의 웹사이트에서 유로화 포기 정책을 삭제했다. 철저한 유로화 반대론자인 파올로 사보나 경제장관 내정자의 임명은 거부됐다. 그 결과 이탈리아 국민은 포퓰리스트 정부와 유로화를 모두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 실패하면 새 정부는 대중의 지지를 잃을 것이다. 국민이 절망하고 분노하게 되면 새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더욱 극단적인 정책에 기댈지 모른다. 유로화에 대한 지지는 약화될 것이다. 정부와 지지자들은 잘 짜놓은 계획을 좌절시켰다는 이유로 EU와 유로화를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립정부가 극우정당 ‘동맹’이 제안한 소득세 단일세율과 ‘오성운동’이 지지하는 보편적 기본소득(UBI)을 도입하면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이란 걸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실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책 자체는 타당하다. 이탈리아 경제는 노동생산성과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과 함께 수요를 진작하는 양방향 정책이 필요하다. 이탈리아가 무거운 부채 부담을 지고 있긴 하지만 저금리와 흑자예산(세입이 국채 이자 상환 전 세출보다 많은 상태) 덕분에 약간의 재정적 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경제회복을 위해 그 여력을 사용할지는 의문이다. 소득세율을 단일화하면 소비 성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자들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면서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재정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감안할 때 UBI가 도입되면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이탈리아 정부가 (EU가 정한) ‘재정적자 상한선’을 넘는 걸 허용할까. EC는 위험한 선례를 만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정부를 좌절시키면 결국 이탈리아 당국을 더 비협조적으로 만들 뿐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공급측면의 개혁(생산성 향상)과 함께 재정적자를 약간 확대하는 정책의 대안이 예산을 맹렬히 늘리고, EU와 분쟁을 벌이고 그 결과 대량의 자본유출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EC는 다시 생각하는 게 좋다.
브뤼셀(EU 집행부)은 EC와 금융기관의 제재를 받게 되면 이탈리아의 새 정부가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재정을 대폭 확대하려는 야망을 포기하고 노선을 바꿀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로마는 새 정부가 유권자를 등에 업고 있는 데다, 이탈리아는 ‘대마불사’여서 (이탈리아 정부가 실패하면) EC와 다른 회원국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에선 이런 상황을 ‘치킨 게임’이라고 부른다. 두 대의 차가 최고 속도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데, 이때 먼저 방향을 돌리는 운전자가 치킨(겁쟁이)이다. 항상 끝이 좋지 않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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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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