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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통화도 힘들어요"… 귀 막은 정부에 손놓은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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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美·中 통상압박 등 현안 넘치는데…

소통 끊긴 정부와 기업
정부, 작년 국정농단 사태 후
기업들과 거리 두기 시작
개혁 밀어붙이며 간극 더 벌어져

대기업 대관팀 '개점휴업'
관료들, 기업인과 만남 자체 꺼려
경제단체마저 정부 '눈치'만
기업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 장창민/좌동욱/김보형/박상익 기자 ] 관료 출신인 A그룹 대외업무 담당 부사장은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공정거래위원회의 후배에게 승진 축하 인사를 건네려 전화를 걸었다가 면박을 당했다. “(불편하니)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에 있는 또 다른 후배를 통해서였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초 B그룹 연구소에서 혁신성장관계장관회의를 열겠다고 통보했다. B그룹은 부랴부랴 회의 준비에 들어갔지만 기재부는 며칠 뒤 돌연 회의를 ‘없던 일’로 했다. 영문을 몰라 하는 B그룹 측에 기재부는 사정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C사의 한 노무담당 임원은 회사 대관팀에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모호한 사안이 많으니 고용노동부에 유권해석을 받아달라”고 했다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핀잔을 들었다. 민감하고 논란이 많은 내용을 눈치 없이 질의했다가 트집만 잡힐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하소연도 못하고… 답답한 기업들

17일 경제계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이 끊기면서 정부 정책에 경제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벌개혁이나 기업들을 지나치게 옥죄는 친노동적인 법안들만 부각되는 등 정부 정책이 균형을 잃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정부가 기업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데다 올 들어선 상법 개정안 등 각종 재벌개혁 정책을 쏟아내면서 간극이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기업들은 바짝 엎드려 눈치만 보고 있다.

기업 대관팀은 ‘개점휴업’ 상태다. 관료들이 기업 관계자들과의 식사는커녕 만남 자체를 꺼리면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 일부 부처는 직원들이 기업 대관팀 임직원을 만나면 서면으로 보고하도록 할 정도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책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고 싶어도 마땅한 채널이 없다”며 “요즘엔 공무원들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소통 부재’로 인한 부작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삼성그룹이 올 들어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 정부와 엇박자를 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은 순환출자 해소 및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 방침 등에 대해 지난 4월 초 금융위와 공정위 고위 관계자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순환출자는 해소하되 생명의 전자 지분 처분은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금융위와 공정위는 ‘삼성과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논의한 사실이 없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삼성에 특혜를 준 것으로 비칠까 우려한 것 같다”며 “삼성이 앞으로 정부와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얘기를 나누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세지는 통상 압박에 속수무책

정부가 경제 현안에 대해 기업들은 물론 경제단체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자 기업들은 “기댈 곳이 없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당장 다음달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단축제도(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지만 정부의 명확한 지침이 없어 기업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뒤늦게 근로시간 단축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가 협의를 통해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서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통상 압박을 놓고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시행된 미국의 철강 쿼터제(수출 물량 제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올해 대미 수출 물량을 263만t(예년 평균 수출량의 70%)으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쿼터제 기점을 5월이 아니라 올 1월로 소급 적용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 사실을 사전에 업계에 알리지 않아 몇몇 철강회사가 쿼터 제한을 피하기 위해 5월 전까지 싼값에 ‘밀어내기 수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이 해외에서 거센 견제와 도전을 받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기업들의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대·기아자동차 등 수입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겨냥한 중국 정부의 가격담합 조사 등에도 속수무책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한 정부와 여당이 앞으로 재벌개혁 및 노동친화적인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들은 손발이 꽁꽁 묶인 데다 입마저 막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장창민/좌동욱/김보형/박상익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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