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섭 화백 '마법의 순간',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 사용
음악과 미술의 아름다운 소통…개인전도 12일 개막
[ 김경갑 기자 ] ‘유명 뮤지션들의 모습만 클로즈업한 음악 포스터는 이제 가라.’
서울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활동하는 중견작가 황호섭 화백(64)의 작품이 오는 10월12~14일 경기 가평 자라섬에서 열리는 음악축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포스터로 선정돼 화제다. 음악 포스터를 유명작가의 그림(작품)을 차용해 만들기는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다. 미술이 재즈음악과 만나 관객과 새로운 소통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황 화백은 포스터에 실린 자신의 작품 ‘마법의 순간(Moment Magico)’ 시리즈에 대해 “즉흥성과 자유로움, 인간 본연의 감성 등이 재즈와 통하는 면이 있다”며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인 영혼의 자유로움과 즉흥성을 통째로 캔버스에 녹여내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미술 전문가들도 “재즈의 속살을 감질나게 들추는 내용을 압축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포스터”라고 평했다.
1984년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황 화백은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이면서도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1980~1990년대 프랑스 메이저 화랑인 장프루니에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한 그는 파리, 뉴욕, 도쿄, 서울 등 국내외 유수의 화랑에서 100회에 가까운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다. 2010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참가국 대표 20명 얼굴 작품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 걸어 주목을 받았다. 2014년에는 고려대의료원과 새만금개발청에 대작을 기증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작가는 지난해부터 경기 청평 작업실에서 매일 15시간 이상 매달리며 신작 ‘마법의 순간’ 시리즈에 공들이고 있다. 포스터 작품은 작년 봄 완성한 ‘마법의 순간’ 시리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의 ‘마법의 순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가 파리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재즈 뮤지션 나윤선을 만나 예술에 대한 공감을 넓혀나간 게 계기가 됐다. ‘예술의 기본은 소통’이라는 점을 그의 재즈음악을 통해 깨달았다. 나윤선과 함께 활동하는 스웨덴 출신인 세계적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가 만든 곡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고, 제목도 거기서 따왔다. “바케니우스의 빠르고 경쾌한 기타 연주와 나윤선의 스캣(가사 대신 아무 뜻이 없는 소리로 노래하는 창법) 화음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실제로 그의 신작에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선율이 잔잔하게 묻어 있다. 어떤 형태나 동작을 묘사하지 않고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반복해서 뿌리고, 건조된 정도에 따라 뿌려진 물감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빨강과 파랑 계통의 물감들이 덩어리가 돼 고이기도 하고, 서로 엉키는가 하면 풍선처럼 날아가기도 한다. 하나의 확실한 구조물을 발견할 수는 없으나 여러 색이 서로 붙잡고 변주하는 ‘색의 재즈’ 같은 게 느껴진다.
요즘도 나윤선의 재즈를 들으며 작업한다는 작가는 “신작에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이질적인 문명과 시·공간성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절대적인 고독과 외로움이 담겨 있다”며 “재즈가 미국 흑인에게서 기원한 이방인의 음악이란 점에서 내 그림과 통한다”고 강조했다.
황 화백은 12일부터 7월3일까지 서울 용산 한강대로 크라운해태제과 본사 쿠오리아갤러리에서 펼치는 개인전에 묵직한 유화의 붓질을 투명한 수채 물감의 발림처럼 경쾌하게 변주한 신작 ‘마법의 순간’ 시리즈 200여 점을 내보일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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