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많은 사랑을 받은 선거송은 박상철의 '무조건'
시대 변하면서 선거송의 의미도 진화
사전투표도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6.13 지방선거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당선을 꿈꾸는 후보자들은 저마다의 공약을 내걸고 한 표를 호소한다. 그런데 바쁜 시민들은 후보자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귀기울여 줄 시간이 없다. 선거포스터나 집으로 배송되는 선거안내 책자도 중요한 홍보 수단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홍보 수단이 있다. 바로 선거송이다.
활자는 우리가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스피커 볼륨을 끝까지 높인 선거송은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한다. 여기에 리듬과 멜로디가 더해지고 중독성까지 가미된다면 그때부터는 하루종일 머리에서 선거송이 맴돌게 된다. 당선을 꿈꾸는 이들이 선거송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송의 정치학. 선거송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 선거송의 의미 "마음의 문을 열어줘"
기업이나 국제 주요 행사에서 사전 행사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본 행사에 앞서 음악으로 행사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경직돼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데 기여한다. 그 이후 본 행사를 가져 처음에 의도했던 바를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음악은 장소의 분위기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선거송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을 한 장소에 모은 다음, 후보의 공약을 전달하고 얼굴을 알려야하는데 분위기가 조용하면 유세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선거송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교감을 나누는데 더 없이 좋은 무기다.
과거 저작권 개념이 미비했던 시기에는 재산이 많은 후보들만 선거송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선거송 제작에 비용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저작권 개념이 없어 마구잡이로 유행가를 선거송으로 만들면서 가수나 작곡가들은 남모를 속앓이를 해야 했다. 2000년대 이후 음악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법이 강화되면서 선거송은 하나의 산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돈만 준다고 해서 로고송을 마음대로 고치는 것은 곤란하다. 선거송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원작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물론 원작자의 명성이나 곡의 유명세에 따라 선거송 제작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현재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선거송 제작에 대한 금액을 다음과 같이 정해놓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각 정당이 지불한 노래 사용료는 얼마나 될까. 곡마다 다르지만 300만원에서 2천만 원 사이를 오가는 노래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문재인 후보 측은 선거송 12곡 제작에 4천 310만원을 지불했고 홍준표 후보 측은 8곡의 선거송을 제작하는데 1억7천만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선거송은?
선거송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불린 선거송은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이다. 박상철의 무명시절을 날려버린 이 엄청난 히트곡은 친숙하고 반복적인 멜로디에 단순한 가사가 반복돼 선거송으로 제격이었다. 이 때문에 '무조건'은 선거송 업계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됐다. 특히 제목 덕분에 선거 메세지로 활용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무조건'은 "나를 무조건 지지해달라", "당신을 무조건 지지한다"라는 가사 등으로 개사돼 수없이 많은 선거 유세 현장에서 사랑받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선거송으로 인한 '무조건'의 저작권 수입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최근에 이 곡을 사용한 선거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 곡을 선거송으로 사용해 역전을 도모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와 지지율 차이가 크게 났던 홍준표 후보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높은 보수층 결집을 위해서 젊은 세대 곡보다는 '무조건'과 같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트로트 곡을 선택했다.
이 곡도 선거송으로 유명하다. 지난 4월 방송된 JTBC '튜유 프로젝트-슈가맨2'에 출연한 '위치스'의 하양수는 자신의 히트곡인 '떳다! 그녀!!'를 부른 뒤 "이 노래가 선거송으로 많이 사용됐다. 후보 1명 당 50만 원을 받았는데 200명이 사용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선거로만 단숨에 1억 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저작권협회에 돈이 잘못 들어온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고 말해 이 곡이 선거송으로 사랑받았음을 고백했다.
'떳다!그녀!!' 역시 선거송으로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 가사와 멜로디가 단순하고 쉬우며 특히 도입부의 브라스가 힘차게 울려퍼져 힘을 북돋아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곡 역시 앞으로 두고두고 선거송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큰 곡이다.
이 곡도 빼놓을 수 없다. DJ DOC는 지난해 6월 스카이티브이(skyTV) 예능 '주크버스'에 출연해 자신들의 히트곡인 'DOC와 춤을'을 선보인 후 "우리 노래로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당선됐다"고 언급했다. 이 곡은 일명 '관광버스 춤'으로 전 세대에 걸쳐 선풍적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이같은 이유로 1997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송으로 쓰이며 젊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또한 DJ DOC의 엄청난 히트곡인 'Run to you'는 지난 19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선거송으로 쓰이며 당선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 지난 대선 선거송은 어땠을까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홍진영의 '엄지 척', 트와이스의 'Cheer up', DJ DOC의 '런 투 유', 나미의 '영원한 친구' 등 12곡의 선거송을 제작했다. '엄지척'은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손동작으로 율동에 활동됐고 기호 1번을 상징해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영원한 친구'에는 국민과 소통하는 친구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남행열차'와 '부산갈매기'는 영호남을 비롯 전국적으로 고루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속뜻을 담았다.
홍준표 한국당 후보 측의 선거송은 총 8곡이었다. 하리의 '귀요미송', 마마무의 '음오아예'부터 박현빈의 '앗! 뜨거' 등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폭넓은 계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곡을 제작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고(故) 신해철의 '그대에게'와 '민물장어의 꿈'을 개사해 사용했다. 신해철은 대표적인 '친노'가수였지만 신해철의 유족 측은 '신해철법' 통과에 안 후보와 국민의당이 노력했던 것을 이유로 안 후보에게 로고송 사용을 허락했다. 또 창작곡인 '국민이 이깁니다', '국민의당 당가', 동요 비행기를 편곡한 '떴다떴다 안철수' 등 총 5곡을 제작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측은 문 후보와 마찬가지로 'Cheer up'을 선거송으로 제작했다. 원곡의 하이라이트인 '샤샤샤'부분을 '444'로 개사해 불러 눈길을 끌었다. 또 박현빈의 '샤방샤방', 노라조의 고등어도 선거송으로 만들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측은 유정석의 '질풍가도', 이문세의 '붉은 노을', 윤민석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등을 골랐다. 심 후보 측은 촛불민심을 대변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미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로고송으로 쓰기도 했다.
▲ 이번 6·13지방선거는 선거송 쟁탈전?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곡은 매번 선거 때마다 각 정당에서 '모셔가기' 전쟁이 벌어진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는 그 양상이 한층 더 짙어졌다. 바로 HOT의 '캔디'와 폭발적 인기를 자랑하는 동요 '아기상어'가 그 주인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17년 만에 뭉쳐 화제가 된 HOT의 대표곡 '캔디'를 핵심 선거송으로 낙점했다. 민주당은 이 곡의 후렴구를 "언제나 시민과 있을게. 이렇게 약속을 하겠어. 시민들을 바라다보며"로 개사해 활용하기로 했다.
HOT의 '캔디'는 앞서 한국당에서도 선거송으로 낙점됐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HOT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국당의 '캔디' 사용을 중단해 달라고 한국당과 저작권자 측에 항의전화를 하는 등의 활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결국 '캔디'는 민주당의 선거송으로 사용하게 됐다.
한국당은 '수능 금지곡'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 멜로디와 가사가 담긴 동요 '아기상어'를 정당용 로고송으로 선정했다. 노랫말에는 민생과 일자리, 복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곡 역시 초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동요 '상어가족' 제작사인 핑크퐁 측에서 로고송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한국당은 '아기상어'의 영미권 원곡을 편곡해 사용하기로 했고 '상어가족' 제작사는 한국당에 '아기상어'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한국당은 '아기상어'는 영미권의 구전 동요이기 때문에 노래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같은 현상은 결국 선거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중독성있고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곡을 선거송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결국 모든 정당의 바람인 것이다.
▲선거송이 소음 아닌 사회적 메신저 되려면
시대가 흐르면서 선거송의 의미도 많이 바꼈다. 과거 선거송이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수단으로써 사용됐다면 이제는 조금 더 진화해 메세지를 전달하고 하나의 축제처럼 느껴지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럴려면 노래가 신나야 하고 거기에 맞춘 율동도 따라와야 한다. 후보가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닌 유권자 모두가 함께 하는 참여형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선거송의 변화는 유권자층이 그 만큼 젊어졌다는 증거다. 과거 트로트 장르에만 한정됐던 선거송은 이제 댄스를 넘어 EDM으로까지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를 공략해 미래 표심을 붙들어 놓겠다는 뜻과 함께 투표율이 낮은 젊은 층의 표를 내 표로 만들어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하지만 선거송의 부작용도 있다. 선거송으로 인한 주민들의 소음신고 건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선거송 제작비 상승으로 인한 선거비용의 증가는 결국 국민 혈세 낭비라는 지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선거송이 혈세의 낭비와 소음이 되지 않고 축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당선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선거송을 통해 비전을 제시했다면 국민들은 그에 반응할 것이다. 당선 이후 자신들이 내걸었던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선거송은 그야말로 당선을 위한 수단으로써 지나지 않게 된다.
선거송은 보통 마이너 음계의 어두운 곡조보다는 밝은 느낌을 주는 메이저 음계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힘차고 신나는 노래들이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마이너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메이저를 꿈꾸는 국민의 바람이 선거송에 집약되어 나타나는 게 아닐까.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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