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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CEO & Issue focus] 줄리 딘 케임브리지 사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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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집념은 강했다
딸 학비 마련 위해 만든 가방
5년여 만에 글로벌 브랜드 '우뚝'

'예쁘고 질 좋은 가방' 으로 승부
'왕따' 딸 위해 학교 옮겼지만
사립학교 비싼 등록금에 고민
학비 모으려 책가방 제조·판매

'셀럽들의 잇백'으로 자리잡아
입소문 타면서 소매점 주문 늘어
제품도 핸드백·지갑 등 다양화
뉴욕 패션위크 '주목 상품' 뽑혀
백화점·유명브랜드서 제휴 요청

"딸 대학 진학하는 등 목표 이뤄"
창업 5년여 만에 매출 185억으로
엘리자베스여왕 '무역상'도 수상
VC투자 받은 후 실적악화 위기도
2년여 만에 경영 복귀후 상승세로



[ 유승호 기자 ]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집에서 식탁을 작업대 삼아 만들기 시작한 가방이 할리우드 스타들의 애장품이 됐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지만 영국 가방 브랜드 ‘케임브리지 사첼’의 얘기다. 오랜 전통의 명품도,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도 아니지만 할리우드 배우 에마 스톤,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 영국 패션모델 알렉사 청 등 세계적인 톱스타들이 케임브리지 사첼 가방을 들고 다닌다. 영국 케임브리지 근교의 한 가정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120개국에 판매되며 세계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그 배경엔 자녀를 사랑하는 한 어머니의 집념이 있었다.

자녀 학비 마련하려 시작한 사업

케임브리지 사첼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줄리 딘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 경영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부였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회계법인과 대학 교직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일을 그만뒀다.

딘은 2008년 여덟 살이던 딸 에밀리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딸이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봤다. 충격을 받은 그는 딸에게 가을 학기엔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딘의 딸은 한 사립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았다. 문제는 등록금이었다. 사립학교 학비는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에밀리의 두 살 아래 동생 맥스까지 합치면 1년에 2만4000파운드(약 3400만원)를 내야 했다. 딘이 가진 여윳돈은 600파운드(약 85만원)뿐이었다. 딘은 “600파운드를 2만4000파운드로 불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사업 아이디어를 종이에 적었다.

머리에 떠오른 열 가지 사업 아이템 중 하나가 책가방이었다. 두 자녀의 엄마로서 그는 아이들의 책가방이 튼튼하지도 않고 디자인도 별로 예쁘지 않아 늘 불만이었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책가방을 하나씩은 사야 하니 사업성이 있어 보였다. 딘은 질 좋고 예쁜 책가방을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시리얼 포장 상자에 갈색 종이를 덮고 시제품 디자인을 그렸다. 회사 이름은 글자 그대로 케임브리지의 책가방 회사, 케임브리지 사첼 컴퍼니로 정했다. 직원을 고용할 돈이 없어 급한 대로 친정어머니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딘은 “열심히 일하고 내 짜증을 참아낼 수 있으면서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어머니였다”고 회고했다.

그다음엔 가방 제조업자를 찾아야 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한 책가방 판매점에 전화해 가방을 어디서 납품받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가게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려 했다. 딘은 30분에 한 번씩 그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가게 주인은 딘의 거듭된 전화에 지쳐 이튿날 헐에 있는 가방 제조 공장을 알려줬다.

‘브리티시 잇백’ 각광

딘은 이틀간 무료 강좌를 듣고 회사 홈페이지를 직접 개설했다. 홈페이지에 가방 사진을 올려놓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회사를 알리기 위해 지역 신문사, 잡지사 등에 하루 300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유명 패션 블로거들에게 가방을 무료로 보내주기도 했다. 초기 주요 고객은 딘의 친구와 친척들이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시내에 있는 소매점들이 케임브리지 사첼의 가방을 팔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 딘은 책가방에서 벗어나 제품 종류를 늘렸다. 케임브리지 사첼은 여성용 핸드백, 백팩, 노트북 클러치는 물론 지갑, 열쇠고리까지 판매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라이프’라는 별도 브랜드로 스카프, 디퓨저, 향기 나는 양초도 내놓았다.

딘은 2010년 뉴욕 패션위크를 앞두고 형광색 신제품을 개발해 패션 블로거들에게 보냈다. 케임브리지 사첼 가방은 그해 뉴욕 패션위크의 최신 상품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꼭 갖고 싶어 하는 가방이라는 의미로 케임브리지 사첼을 ‘영국의 잇 백(it bag)’이라고 불렀다.

패션위크 직후 구매 주문이 1만6000건 들어왔다. 1주일 판매량이 100개 남짓이던 때였다. 대형 백화점에서 케임브리지 사첼 가방이 팔리기 시작했고 콤데가르송 등 유명 브랜드에서 제휴 요청이 들어왔다.

시련과 재도전

케임브리지 사첼의 매출은 2013년 1300만파운드(약 185억원)로 늘었다. 딘은 주목받는 여성 기업인으로 떠올랐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주는 ‘기업·국제무역상’까지 받았다.

2014년 초엔 벤처캐피털에서 2100만달러(약 225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그 직후 위기가 찾아왔다. 벤처캐피털이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딘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케임브리지 사첼의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회사 매출은 2014년 1000만파운드, 2015년 750만파운드로 급감했다. 2015년엔 500만파운드가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딘은 2016년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수시로 임원들과 메신저로 대화하고 회의를 소집하며 경영 전반을 일일이 챙겼다. 사업이 다시 본 궤도에 오르면서 2016년 매출은 1100만파운드로 회복됐다. 영업수지도 흑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딘은 “나만큼 내 사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딘의 딸은 지난해 가을 대학에 입학했다.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으니 목표를 이룬 셈이다. 딘은 “아이를 위해 사업에 성공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하고자 하는 바를 해냈다”고 말했다. 사업에 대한 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딘은 “나는 무슨 일이든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이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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