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을 활발히 모색하는 기업들
록히드의 최신예기 산실 스컹크 웍스처럼
조직 내 저항 우회하는 백신전략이 효과적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북핵 안보위기가 심화하면서 신문 지면에서 군사무기와 관련한 기사를 자주 접한다. 제공권이 승패를 좌우하는 현대 전쟁에서 전폭기는 핵심 무기다. 미군의 최신예 스텔스전폭기 F-22 랩터는 지구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어 ‘대(對)외계인용’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적국으로서는 대적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에 F-22 랩터가 전개됐다는 뉴스 자체가 강력한 군사적 압박이 된다. 최근에도 동북아시아에 전진 배치돼 적성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F-22 랩터를 비롯해 최첨단 전폭기로 명성이 높은 F-35 라이트닝2, F-117 나이트호크 스텔스폭격기 등의 개발 과정을 따라가 보면 켈리 존슨(1910~1990)이라는 인물로 수렴한다. 천재적인 항공엔지니어로 2차대전 당시부터 군용기 개발에 참여했고, 1943년 설립된 ‘스컹크 웍스(Skunk Works)’라는 개발팀의 책임자로 일했다. 1975년 은퇴 후에는 후진들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943년 록히드사는 신예기 개발을 위한 별동대를 구성한 뒤 33세의 존슨을 책임자로 임명하고 운영 관련 전권을 위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 구석에 배치했던 초기 부지 주변의 고무공장에서 발생하는 악취가 심해 스컹크들이 일하는 장소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스컹크 웍스’가 팀의 명칭이 됐다. 그는 회사 내 최고의 인재들로 팀을 구성해 미군 최초의 제트전투기 F-80, 세계 최초 마하2 전투기 F-104, 세계 최초 마하3 정찰기 SR-71 등 명품 군용기들을 연이어 개발했다. 1957년 실전에 투입된 U2 정찰기는 60년 후인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
존슨의 탁월함은 천재적인 엔지니어로서의 개인적 역량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최강의 조직을 만들어낸 리더였다. 최고의 인재들이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와 조직문화를 구축해 다음 세대에도 초일류 개발팀의 유전자로 이어져 내려오게 했다. 조직 운영의 철학은 자유와 책임에 기반한 실용성의 추구였다. 엔지니어의 전문적인 역량을 존중해 문제해결 방법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분위기를 만들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했다. 신뢰성이 확인된 기존 설계와 부품을 최대한 활용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최고의 기술로 최고의 제품을 최고의 가격으로 만드는 기술의 함정에 빠지는 위험을 경계했다. 그는 한정된 개발예산을 혁신 부문에 집중시켜 충분한 성능에 적절한 가격으로 신뢰성 있는 산출물을 만들도록 개발팀을 독려했다. 결과적으로 스컹크 웍스가 개발한 항공기들은 당대의 첨단기술이 집약돼 있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생산됐다.
경쟁사 맥도넬더글러스는 스컹크 웍스의 성과를 벤치마킹해 팬텀웍스를 세웠고, 미국 해군에서도 에어웍스를 설립했다. 나아가 정보화 시대의 디지털 기업들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태스크포스 구성에서 스컹크 웍스의 조직원리를 적용했다. 1980년대 IBM의 PC사업 개발팀, 2004년 출시된 모토로라의 베스트셀러 레이저(Razr),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구글의 구글엑스(Google X), 아마존의 킨들과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 개발팀이 대표적 사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도전에 직면한 한국 기업들도 디지털 혁신에 대한 모색이 활발하다. 경영진은 창의적이고 대담한 시도를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조직과의 불협화음으로 한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저항하는, 일종의 조직 내 항체와 면역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리더들이 미래를 위한 사업모델 재편과 조직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스컹크 웍스와 같은 독립적 구조의 팀을 구성해 면역시스템을 우회하는 ‘백신전략’의 접근이 효과적이다. 조직 내부에 혁신을 위한 이질적 요소를 투입하되 기존 질서와는 구분하고, 자율성을 부여해 활력을 유지하면서 성과를 거두고, 일정시간 경험이 축적되면 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조직 혁신과 변화관리 전략에서 스컹크 웍스는 훌륭한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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