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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투자자 외면 자초하는 금융투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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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기업 ABCP 발행사들 서로 남 탓
금투업계 전반 '신뢰 위기'로 이어질 수도

송종현 증권부 차장



[ 송종현 기자 ] 차이나에너지리저브&케미컬그룹(CERCG). 에너지 개발 및 가스·석유 판매 등의 사업을 하는 이 중국 기업을 아는 사람은 한국에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요즘 금융투자업계에서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르는 기업 중 하나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곳의 자회사(CERCG오버시즈캐피털)가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투자한 증권사들이 대규모 손실을 볼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미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도 많다. 주로 개인투자자들이다. 이 ABCP를 편입한 공모 전단채(전자단기채) 펀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가운데 상당수가 약 4% 손실을 입고 환매에 나섰다.

전단채펀드는 전자 방식으로 발행되는 만기 1년 미만의 채권, 기업어음(CP), 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 투자하는 펀드다. 이 ABCP를 담은 공모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KTB자산운용의 ‘KTB 전단채 펀드’는 사고가 터지기 전 4000억원대였던 설정액이 1주일 만에 2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아직 환매 결정을 내리지 못한 투자자들이다. 상당수는 “평균 연 1.7% 수준인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은 연 2% 초반대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증권사들의 권유로 수억원의 ‘뭉칫돈’을 이 상품에 집어넣었다. “은퇴 후 쓰기 위해 퇴직연금 계좌로 투자한 사람이 많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요즘 가슴을 졸이며 해당 ABCP 발행 주관 증권사와 이 상품에 높은 신용등급(A20)을 부여한 신용평가사(나이스신용평가), 펀드 운용사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이 발행한 ABCP에 문제가 생긴 만큼 개인투자자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관련 금융투자회사들의 채권회수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에 따라 거액을 회수할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진 뒤 주관 증권사, 신평사, 관련 펀드 운용사 등이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는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발행 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은 이번 사태에 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가 “자체 심사 능력을 갖춘 전문투자자만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했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는 있을 수 없다”고 강변했을 뿐이다. 해당 ABCP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한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내 회계기준과의 차이 등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추가 자료를 징구하고 경영진 면담을 하는 등 25일간 분석했다”는 내용이 담긴 해명자료를 냈다.

여기에는 결정을 내린 배경 설명만 있을 뿐 투자자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담겨 있지 않았다.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혹시 있을지 모를 투자자들과의 소송에 대비해 책잡힐 행동을 일절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라며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이해 안 가는 행동은 아니지만 이를 본 개인투자자들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는 금융투자업계 전반의 ‘신뢰 위기’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종 인터넷 주식투자 커뮤니티에는 “앞으로 증권사들을 절대 믿지 않겠다”는 글이 봇물처럼 올라오고 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다음날 아침 신문에 내가 한 행동이 실렸을 때 부끄러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양 고전 ‘맹자’에서 비롯된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라)라는 말이 떠오르는 최고 수준의 윤리의식이다. CERCG ABCP 관련 금융투자회사 관계자들은 물론 업계 모든 종사자가 이 준칙을 가슴에 새겨야 할 시점이다.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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