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후 10% 넘는 보험계열사 지분 정리위해
김상조·최종구 위원장 “전자지분 팔라” 압박 한달여만
‘지분정리+정부 압박 화답’ 1석2조
≪이 기사는 05월30일(15:5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0.42%를 주식시장에서 매각한다.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 계획에 따라 보유지분이 10%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정부 관계자들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하는데 따른 조치로도 해석된다.
30일 금융권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이날 장 마감 후 삼성전자 주식 2700만주(0.42%)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파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삼성생명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다. 매각 대상은 삼성생명 보유지분 2311만주(0.36%)와 삼성화재 보유지분 389만주(0.06%)로 약 1조3000억원 규모다. 글로벌 IB인 골드만삭스와 JP모간이 매각주관사를 맡아 물량 대부분을 글로벌 자산운용사 등 해외 기관투자가가 사들일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식시장에서 매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성물산 등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가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게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이 전자 주식을 매각하는 건 보험사가 10% 넘는 일반 제조회사의 지분을 사실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분리법)’을 지키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작업을 진행 중이다. 절반은 지난해 소각 완료했고 나머지 지분은 올해 이사회 결의를 거쳐 소각할 계획이다. 자사주 소각이 완료되면 삼성전자 발행주식은 64억1932만주에서 59억6978만주로 줄어든다. 분모가 줄어듦에 따라 삼성그룹의 보유 지분율도 올라간다. 삼성전자 지분 9.72%(6억2396만주)를 갖고 있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경우 지분율이 10.45%로 늘어난다. 블록딜로 2700만주를 팔면 두 회사의 보유지분은 9.999%(5억9696만주)로 금산분리법을 아슬아슬하게 맞추게 된다. 20.21%에서 21.7%로 늘어났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보유지분도 21.28%로 ‘20%선’을 유지한다.
IB업계는 삼성전자 블록딜을 자사주 소각에 따른 지분 변동을 정리하는 동시에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압력에 화답하는 1석2조의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라는 정부의 압박에 대해 최소한의 성의표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번 블록딜은 최종구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보험업법 개정 이전에 대기업 소속 금융회사들이 계열사 주식을 팔아야 한다”며 삼성생명을 겨냥한지 한달 열흘, 김상조 위원장이 지난 10일 “결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려야 한다”며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압박한 지 20일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2016년 경제개혁연대 보고서에 자세한 방안이 나와 있다”며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전자 보유 지분율(8.27%)을 2대주주인 삼성물산(4.65%)보다 낮추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방안 대로라면 삼성생명은 전자 지분 3.62%, 약 12조원어치를 팔아야 한다. 대규모 지분매각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지분 2%를 사들여 1~2대 주주를 바꾸는 구조를 예상하기도 했다. 이날 블록딜의 규모는 정부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성의 표시’를 했다는 점에서 명분과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이다. 삼성그룹은 김 위원장의 발언 다음날 있었던 삼성생명 실적발표 콘퍼런스콜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 밝혔었다.
다만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추가로 전자 지분을 시장에서 매각할 지는 예상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블록딜로 목표 지분율 만큼을 팔려면 앞으로 10여 차례 더 매각을 시도해야 하는데 주식시장과 삼성전자 주가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날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나 다른 기업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과 블록딜을 적절히 섞어 지분을 줄여나갈 것이란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SDI는 최근 한화종합화학 지분 24.1%를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털에 팔아 약 1조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어떤 구조를 선택하든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골격을 바꾸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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