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KLPGA 20번째 대회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 우승
김아림과 접전 끝에 1홀차 승리
상금 1억7500만원·굴삭기 받아
"다음달 한국오픈도 우승하고파"
[ 조희찬 기자 ]
박인비(30·KB금융그룹)는 그동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쑥스러운’ 영구 시드권자였다. 미국 일본 유럽 등 해외 투어에서 20승 이상을 거둬 KLPGA 투어 영구 시드권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 대회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그런 박인비가 데뷔 11년간 이어진 긴 악연을 매치플레이에서 끊었다. 그는 20일 강원 춘천시 라데나골프클럽(파72·6313야드)에서 열린 KLPGA 투어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총상금 7억원) 대회 마지막 날 열린 결승전에서 김아림(23·SBI저축은행)과 마지막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1홀 차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KLPGA 투어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박인비는 우승상금 1억7500만원을 챙겼다. 부상으로 걸린 3000만원 상당의 미니 굴삭기도 함께 받았다. 박인비는 주최 측의 배려에도 “굴삭기를 현금화하지 않고 농장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께 선물로 드리겠다”고 말했다.
미국 일본 유럽 이어 한국 투어 정상에
박인비는 그동안 KLPGA 투어에서 우승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장타자가 즐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정교함을 앞세워 여제로 거듭난 그였다. 세계 정상급 쇼트게임 능력을 갖춘 그가 국내 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LPGA 투어에서만 19승을 거뒀고 일본(4승)과 유럽(공동 주관 대회 포함 3승)에서 얻은 우승 경험을 더해 매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박인비는 유독 국내팬들 앞에선 우승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다. 처음 참가해 준우승을 기록한 하이원컵 SBS채리티여자오픈을 시작으로 이후 준우승만 다섯 번이 더 나오는 동안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선 전승으로 결승까지 올라갔다가 우승 문턱에서 김자영(27·SK네트웍스)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박인비는 세계 주요 여자골프투어에서 모두 우승컵을 챙긴 선수가 됐다. “국내 팬들 앞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한 박인비는 11년, 20개 대회 만에 약속을 지켰다.
퍼터 교체만 네 번째…승부수 통했다
박인비는 올해 초 퍼트 난조로 고생했다. 이 때문에 이 대회 전까지 퍼터만 세 번 바꿨다. 말렛(mallet: 헤드 뒷부분이 뭉툭한 형태)형 퍼터를 들던 그는 LPGA 투어 파운더스컵에서 일자형 퍼터를 들고 우승을 차지했다. LA오픈 때 다시 말렛형 퍼터로 돌아갔다가 파운더스컵에서 들던 일자형 퍼터를 다시 잡았다.
일반적인 프로 선수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자신의 스트로크에 확신이 있는 박인비라 가능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다른 모델이지만 또 한 번 일자형 퍼터를 꺼내 들었다. 예선에선 적응에 애를 먹었지만 우승으로 ‘여제의 품격’을 보여줬다.
박인비의 남편 남기협 씨는 “아내가 말렛형 퍼터를 오래 썼는데 손에 익지만 스트로크 실수가 나왔을 때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었다”며 “일자형 퍼터는 방향 실수가 나오면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 과감히 퍼터를 교체했다”고 배경을 전했다.
한국 대회 우승 위해 과감히 일정 조정
박인비가 유독 한국에서 고전한 이유 중에는 체력 문제도 있다. 그는 지금까지 참가한 KLPGA투어 거의 모든 대회에서 미국 LPGA투어 대회가 끝나는 대로 한국으로 건너오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박인비는 “지난 20개 대회 중에서 17개 대회는 앞뒤로 LPGA투어 대회 일정이 있었다”며 “대회 전주와 그다음주를 모두 쉬고 한국 대회에만 전념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집중하기 위해 이 같은 선택을 했고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타이틀 경쟁을 하면 일정을 비우기가 쉽지 않고 다른 선수들이 많이 나가면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다짐했고 많은 경기에 뛰지 않으려고 변화를 줬다”고 덧붙였다.
박인비는 다음달 14일 개막하는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도 비슷한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한국여자오픈 대회 기간 전주와 대회 다음주 일정을 비워놓을 예정이다. US여자오픈과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제패한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내셔널 타이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
박인비는 “US여자오픈과 함께 가장 기다려온 대회가 한국여자오픈”이라며 “국내 내셔널 타이틀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고, 이에 맞춰 몸 상태를 끌어올리며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열린 3~4위 결정전에선 최은우(23·위드윈)가 이승현(27·NH투자증권)을 5홀 차로 누르고 3위에 올랐다.
춘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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