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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비워야 보이네, 황금빛 인생… 서울숲 여백이 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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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그 곳 (3)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촬영지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다. 꽃비가 내리던 공원은 형형색색 튤립으로 가득하고 동네 어귀에서는 아카시아 향이 맴돈다. 서울숲은 종영한 ‘황금빛 내 인생’을 비롯해 다양한 드라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진초록으로 갈아입은 숲에서 꽃들의 향연을 만끽하고 싶다면 서울숲에서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조각정원부터 생태숲 친환경 체험공간

서울숲역 3번 출구로 나와 광장에 들어서면 한 무리의 기마대가 달려든다. 기수가 탄 말들이 질주하는 ‘군마상’이다. 서울숲 일부가 과거 경마장이었고 수백 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실 사냥터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상징물이다. 역동적인 군마상 뒤로 여름철 아이들의 천국인 바닥분수가 나온다. 6월만 돼도 북적거리는 이곳은 벤치와 산책로가 어우러진 숲속 광장의 초입이다. 점점 울창해지는 숲이 뿜어내는 신선함을 들이마시며 조각상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메인 광장이다.


다양한 문화예술 이벤트가 열리기도 하고 돗자리 깔고 책을 보거나 식사도 하며 쉬어가기도 하는 전형적인 공원이다. 오른쪽에는 메타세쿼이아길이 울창하고 왼쪽으로는 아기자기한 숲길이 있어 광장이지만 아늑하고 다채롭다.

나무들 사이로 이색적인 조각이 드문드문 자리한 조각정원은 메타세쿼이아숲을 배경으로 고층 빌딩을 액세서리화한 도심 속 허파.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나무들 덕에 그늘과 햇살이 적절한 안성맞춤 소풍공간이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주된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서인지 주말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유독 많다.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최적지

50% 가까운 시청률로 국민드라마 반열에 오른 ‘황금빛 내 인생’은 2018년을 살아가는 가족의 성장통을 그렸다. 자식에게 헌신적인 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는 한때 잘나가던 상사맨이었다. 유복하게 살았지만 50대에 사업이 망한 뒤 재기에 실패하고 막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슬픈 가장이다.


사남매와 소시민으로 살아가던 이들은 쌍둥이 자매 중 첫째인 서지안(신혜선 분)이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장남인 서지태(이태성 분)가 결혼할 즈음 지안은 자신과 쌍둥이 동생 서지수(서은수 분)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딸인 지안을 재벌가로 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한 어머니 양미정(김혜옥 분)에 대한 원망과 충격에 친오빠 결혼식도 불참하려던 지안은 재벌가 아들 도경(박시후 분)의 도움으로 뒤늦게 결혼식에 도착한다.

서울숲 조각정원에서 열린 지태의 결혼식은 어머니 양미정의 거짓말을 눈치 챈 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의 고통이 엿보이는 명장면이다. 일촉즉발의 가족 붕괴 상황을 예측하게 하는 장면이 아름다운 단풍을 배경으로 한 숲속 결혼식이라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했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한 화해와 용서의 장면도 서울숲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다. 가족이 붕괴되고 서로를 남보다 미워하던 상황은 각자의 깨달음을 통해 조금씩 해결 국면에 이른다.

울창한 자연 속 여백의 공간은 각자의 삶에 대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갈등의 본격화와 해결이라는 정 반대의 상황을 모두 서울숲에서 촬영한 것도 어쩌면 자연과 더불어 성찰하고 성장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꽃사슴과 고라니, 나비가 유영하는 곳

주말에는 번잡하지만 평일에는 적막한 조각공원이 서울숲의 심장이라면 건강한 이목구비(耳目口鼻)와 활기찬 수족(手足)은 메인 광장 왼쪽에 자리한다. 어린이들이 몰리는 이곳은 다양한 놀이기구와 모래놀이터, 상상 속 거인이 형상화된 체험공간 등으로 여느 도심 속 공원과도 차별화된다. 시민들이 참여해 기획하고 여러 기업이 후원한 공간인 만큼 놀이기구 하나하나 비범하고 실용적이어서다.

차와 간단한 간식도 해결할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 옆 호수를 지나 자동차 도로의 지하 연결 통로를 통과하면 서울숲의 하이라이트인 생태숲과 조우한다. 방목 중인 꽃사슴과 고라니 먹이주기 체험은 서울숲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하지만 그냥 하릴없이 숲을 산책하다 보면 꽃사슴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생태숲에서 한강변까지 이어지는 보행가교는 방목된 야생동물의 생활을 관찰하는 전망대다. 보행가교 위에서 생태숲을 내려다 보면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동물들과 사시사철 변화하는 꽃들의 향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숲 생태공원 한가운데를 지나 강변도로를 가로질러 한강변 선착장에 이르는 보행가교는 서울숲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산책로다. 숲 한가운데에서 생명체들과 노닐다 보면 어느덧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치 시공간을 넘나든 것마냥 어리둥절해지기 일쑤다. 맑은 숲속 공기 속 새소리가 탁한 매연으로 돌변하며 자동차 소음으로 바뀌고, 비릿한 강내음 속 물결치는 선착장에 이르게 되니 시각과 청각 후각이 동시에 열리는 산책로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웨딩촬영 중인 여러 나라 신랑신부를 만나는 것은 서울숲만의 이색적인 매력이다. 벚꽃길이나 곤충 체험관에도 다문화 연인과 아이들은 흔하다. 서울숲이 어느새 서울의 국제적 명소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

여행메모

특별한 맛집을 원한다면 지하철 서울숲역 4번 출구 쪽 성수동 카페골목과 1번 출구에서 뚝섬역 근처까지 걸어보자. 서울숲역 1번 출구 500여m 전방의 성수동 ‘밀도’는 빵 마니아들의 성지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큐브빵을 먹으며 근처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서울숲을 산책하는 젊은이들도 흔히 보인다. 든든한 한식이나 분식을 원한다면 서울숲역 4번 출구로 나와 떡볶이집 뚝떡이나 돼지갈비 전문점 대성갈비도 추천할 만하다. 오래된 맛집이라 주말에는 대기가 길다는 것이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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