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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 토론]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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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병욱/심은지 기자 ] 오는 7월1일 ‘주 52시간 제도’ 시행을 앞두고 노사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허용 기간 확대’ 여부를 놓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기간 내에서 업무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2주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면 업무가 많은 첫째 주는 58시간을 일하고, 상대적으로 일이 줄어드는 다음주엔 46시간 일하는 방식이다. 2주간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 한도인 주당 52시간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다. 국회가 지난 2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사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사 합의를 전제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대 3개월까지 허용한다. 재계는 이 기간을 최대 1년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노사 합의가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부칙 제3조에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2년 말까지 탄력근로제 개선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기업들은 연중 일감이 고르지 않고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는 산업에선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확대돼야 한다고 항변한다. 에어컨 제조업체나 빙과류 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매년 신제품을 출시하는 전자·게임산업 등에서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노동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장시간 근로와 산업재해 등을 조장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확산되면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드는 것도 노동계가 반발하는 요인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둘러싼 찬반 양측의 의견을 들어본다.

[찬성] 건설·조선, 계절 수요변동 큰 업종 등 3개월 단위론 근로시간 조정 어려워

美·日·佛, 근로시간 1년 단위로 탄력적 조정 가능

1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이 오는 7월1일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법 시행을 앞둔 기업들은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량 유지·확보를 위해서는 업무 집중도 향상 등 다양한 방안이 요구된다. 일단 현행법에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을 검토하는 기업들이 많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쉽게 말하면 바쁜 시기에는 근로시간을 연장하고 그 대신 한가한 시기의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일정 기간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 내로 맞추는 제도다. 계절적 영향을 받는 업종 등에 도입이 가능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취업 규칙에 의할 경우는 2주 단위로, 노사 간 서면 합의에 의할 경우는 3개월 단위로 가능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절히 활용하면 사용자는 생산 물량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정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근로자도 근무시간이 줄고 휴일이 늘어나는 등 일과 생활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1997년 제도 도입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의 활용은 미미하다. 최근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률은 3.4%에 불과했다.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들이 활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부분이 크다.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특정 주에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연장 근로 12시간을 포함하면 최대 1주 64시간을 근로할 수 있다. 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1주 최대 68시간이 가능했기 때문에 굳이 활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다만 현재 단위 기간이 3개월로 제한돼 있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신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는 스마트폰 개발 기업은 통상 출시 예정일 3~6개월 전부터 집중 개발에 들어간다. 건설이나 조선업도 발주 기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기상 악화 등의 이유로 마지막 3개월은 집중적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행 2주 또는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로는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주문 생산이 많은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의 고민은 더욱 크다. 금형 업체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주하면 선적까지 6~8주간 밤·주말 근무를 해야 겨우 납기를 맞출 수 있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40% 이상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다. 이런 현실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3개월로 한정하는 것은 납기를 맞추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인력을 충원하기도 어렵다. 인건비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채용할 숙련공이 부족하다.

독일이나 영국은 평균 근로시간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지 않는 이상 노사가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배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프랑스 일본 미국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 단위로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선진국 사례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는 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기업의 생산성 증가를 이끌어내고 근로자의 불필요한 연장 근로를 방지하며 4차 산업혁명에 원활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대] 현행 제도로도 기업 애로 해소 가능… 탄력근로 확대는 일방적 기업 편들기

OECD 평균 훨씬 웃도는 장시간 근로 해소가 우선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기업 업무량의 변동 폭이 커지거나 일시적으로 급증하는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다. 기업들은 2주 또는 3개월 단위 기간 내 기준 시간만 맞추면 초과 노동 할증률을 적용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선 할증률 적용이 안 되고, 노동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단점만 있으며, 이점은 없는 사용자 편향적 제도다. 우리는 주 40시간제 도입과 함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의 반대급부로 사용자의 비용 증가나 가동시간 제한을 상쇄해 주기 위해서다.

서구 국가들은 주 40시간 미만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자투리 시간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노동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독일은 금속노조와의 단체협상으로 기준 노동시간을 1984년 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바꿀 때 2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처음 도입됐고, 1987년 37.5시간제와 37시간제로 바꾸면서는 6개월 단위로 확대됐다.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 주 39시간제 시행과 함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처음 도입됐다. 1998년엔 주 35시간제를 적용하면서 1년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논의됐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은 기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게 아니다. 주 40시간제에는 변동이 없다. 1주일을 5일이라고 보는 비상식적인 행정해석을 바로잡아 주 68시간까지 허용되는 체제를 52시간 체제로 정상화하는 국면이다. 이때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쟁점으로 삼는 건 논리적인 타당성이 없다. 더구나 주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웃도는 노동자 비중은 약 40만 명으로 극소수이고,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사람도 소수인데, 2000만 명가량의 전체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건 설득력이 없다.

주 68시간제에서 이미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됐다는 게 황당한 일이다. 더구나 26개 업종 400만 명가량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적용 예외 제도와 휴일 노동을 근로시간 제한에서 제외하는 행정해석이 있었다. 근로시간 측면의 근로감독은 거의 없는 나라, 사실상 무한노동이 허용된 나라에서 격에 맞지 않는 고상한 제도를 도입했던 것이다. 비정상을 바로잡고 예외 업종을 5개로 축소했지만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시간 제한이 미적용되는 상황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자는 주장은 논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일방적인 기업 편들기다.

일시적 물량 급증에 대처하거나 계절 변동이 심한 업종에 한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다. 현재 2주 단위, 또는 노사 합의를 조건으로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초장시간 노동과 변칙이 사실상 허용돼 있어 이런 복잡한 제도를 굳이 가동할 필요가 없었다. 주 52시간제로 정상화되고 예외가 축소된 지금은 현행 수준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이다.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제도를 온전히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개 발에 편자’ 격이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연간 400시간가량 더 일하는 장시간 노동 국가이자 무한노동을 허용하는 틈새가 여전한 나라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흐름을 거스르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시기상조이자 성급하고 편향적 발상이다. 주 40시간이 진정 표준이 될 때에야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가 가능하다.



도병욱/심은지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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