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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61년만의 정권교체…주역 마하티르 총리,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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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아버지 vs 개발독재자' 평가 엇갈려
이르면 10일 총리 취임 선서…세계 최고령 국가정상 될 듯


말레이시아 야권연합이 9일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해 독립 후 61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를 이뤄 낸 마하티르 모하마드(93) 전 총리의 삶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인생역정을 보여준다.

마하티르 총리는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말레이시아를 제조업 강국으로 변모시켜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반면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통치한 독재자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1925년 영국 식민 치하의 말레이 반도에서 태어나 의사가 된 그는 1957년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1969년 툰쿠 압둘 라만 당시 총리가 중국계의 경제적 지배에 짓눌린 말레이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다가 한때 정계에서 축출됐으나, 1972년 툰쿠 총리의 사임으로 복귀한 뒤로는 각부 장관과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결국 1981년 후세인 온 당시 총리가 건강 악화로 사임하자 총리직을 승계했고, 이후 2003년까지 무려 22년간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이 기간 그는 경제성장을 먼저 이뤄낸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룩 이스트(Look East)' 정책과, 말레이시아를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겠다는 '와와산 2020' 등을 주창하며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발전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 들어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라섰고, 국내총생산(GDP)은 1981년 250억 달러(약 27조원)에서 2003년 1100억 달러(약 120조원)로 급격히 증가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일축하고 고정환율제 채택, 외국자본 유출 금지 등 독자적 조치로 경제를 회복시킨 것도 높이 평가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사법부를 정부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등 독재와 인권탄압을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미주의적 태도로 서방과 줄곧 마찰을 일으킨 것과,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고수해 중국계와 인도계를 차별한 것도 실책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 국민 사이에선 그의 총리 복귀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나트남 국제연구소의 라샤드 알리 연구원은 "많은 이들이 마하티르를 말레이시아를 구하기 위해 과거에서 돌아온 구원자적 인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집권여당연합 국민전선(BN)을 이끄는 나집 라작 총리의 부패의혹과 민생악화 등에 대한 불만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나집 총리는 2015년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수조원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이후 지도력이 크게 훼손됐다.

한때 나집 총리의 후견인이었던 마하티르는 비자금 스캔들을 계기로 총리 축출 운동을 벌이다가 실패하자 야권지도자로 변신했고, 작년 말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의 총리 후보로 추대됐다.

이번 총선에서 PH가 승리함에 따라 마하티르는 이르면 10일 취임선서를 하고 15년만에 다시 총리직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그는 세계 최고령 국가정상이 된다.

현재 현직인 국가정상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은 튀니지의 베지 카이드 에셉시(92) 대통령으로 알려졌다.

마하티르는 이번 총선 선거운동 기간 고령에도 하루 수차례씩 대중연설을 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해 왔다. 그는 동성애 혐의로 투옥된 야권의 실질적 지도자 안와르 전 부총리가 올해 6월 석방되면 적당한 시점에 총리직을 이양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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