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완/임현우 기자 ] 일명 ‘드루킹 사태’로 불리는 댓글 조작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원으로 확인된 파워블로거 드루킹(필명)이 동조 세력을 동원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오른 기사 댓글에 집중적으로 ‘공감’을 클릭해 여론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경찰과 검찰은 드루킹으로 불리는 김모씨의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씨와 공범 등 세 명을 재판에 넘긴 데 이어 김씨와 주변 인물의 활동자금 내역까지 조사하고 있다. 경찰이 이제까지 파악한 김씨 등의 혐의는 ‘매크로 프로그램(같은 작업을 단시간에 반복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에 집중적으로 공감을 클릭한 것이다. 해당 댓글을 포털사이트 댓글창 상단에 노출해 네티즌이 다른 댓글보다 쉽게 볼 수 있도록 공감 수를 조작하려던 시도로 보인다.
이번 사태로 온라인 여론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여론 조작에 무방비 상태인 포털업체들의 온라인 뉴스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거론되는 대책 중 하나가 ‘댓글 실명제’다. 인터넷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될 때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02년 인터넷 게시판의 익명성을 악용한 다양한 범죄가 급증해 도입됐다가 2012년에 폐지됐다.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와 관련해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공익의 효과도 미미하다고 보고 위헌 판결을 내렸다. 다만 헌재가 2015년에는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는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인터넷 실명제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여지를 남겼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5%는 ‘악성 댓글을 근절하고 타인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인터넷 댓글 실명제 도입을 찬성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댓글 실명제 도입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의견을 들어본다.
[찬성] 인터넷 포털에서의 여론조작…책임지지 않는 익명성이 근본 원인
실명 걸고 참여해야 왜곡 없는 공론 형성
인터넷 공론장에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이른바 ‘드루킹’의 댓글 조작 사건이다. 그 얼마 전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댓글을 달았다가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현 정권 인사와 관련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런 사건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것이다. 어떤 내용이든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가 너무 쉬운 것이 국내 인터넷 환경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90세가 넘은 노인도 가짜뉴스를 올리고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타인을 비방할 수 있으며, 기술만 있으면 조회수든 뭐든 조작이 가능하다.
이런 인터넷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여론 왜곡이나 사이버 폭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이다. 익명성은 종종 사람을 표변하게 한다. 1977년 뉴욕대정전 당시 약탈, 방화, 강간 등으로 3700여 명이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멀쩡하던 시민들이 폭도로 변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남이 모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얌전하던 사람들이 야수로 변했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익명성이 칠흑의 역할을 한다. 어떤 내용을 올리든 상대방이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용감해진다. 물론 나중에 인터넷 주소(IP) 추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일단 나를 숨길 수 있다는 생각에 야수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인터넷 실명제다. 다만 2007년 정보통신망법에 도입된 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위헌 판정을 받은 정보통신망법은 쓰기뿐만 아니라 읽기에도 실명 확인을 강제했고 이용자 10만 명 이상으로 확대해 규제 대상을 너무 넓힌 것이 위헌 요소가 됐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가 그 자체로 위헌인 것은 아니다. 이는 헌재가 공직선거법의 인터넷 실명제는 합헌 결정을 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거법에 따라 선거운동 기간에는 포털업체,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정당과 후보자를 지지, 반대하는 글을 올릴 때 실명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선거기간에 인터넷에서 흑색선전이나 허위사실 등이 유포될 경우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정보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선거 공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어서다.
인터넷은 공론의 장이다.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대형 포털은 더욱 그렇다. 공론의 장에서는 한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이 광범위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적인 자리와 다르다. 그 영향은 여론이라는 형태로 결집된다. 현대 민주 정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국민 여론이 즉시 국가 정책 결정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여론을 왜곡하는 것은 한 나라의 진로를 오도하는 결과가 된다. 나치의 여론 조작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론의 장이 왜곡돼 한 나라가 파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 헌법학자들이 언론의 자유가 다른 자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발언에 대한 책임이 확보돼야 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야 지당한 얘기지만 공론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발언에 대한 책임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 제도적 장치가 인터넷 실명제다. 예컨대 이용자 수 상위 10~20위 이내의 대형 사이트라면 명백한 공론의 장이요,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자신의 실명을 걸고 공론에 참여하는 것이 왜곡 없는 공론 형성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반대] 댓글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헌재 위헌 결정 받은 '과도한 제한'
실익 없이 국내기업 경쟁력만 약화시킬 수도
정치권이 연일 댓글 규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댓글의 여러 부작용이 있다 할지라도 ‘실명제’가 해법은 아니다. 실명제가 해법인 듯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인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는 처사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 실명제를 5년이나 실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12년 헌법재판소 전원일치 결정(2010헌마47)으로 그 위헌성과 무익함은 명백히 밝혀졌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사업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실효성보다 부작용이 더 큰 제도라는 데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또한 수사 편의 등에 치우쳐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와 같이 취급해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임을 명백히 했다.
인터넷 실명제 시행으로 규제 목적이 달성됐다는 실효적 증거가 없고, 사이버 망명 등과 같은 역효과만 초래했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정보의 삭제·임시조치, 게시판 관리·운영자에 대한 불법 정보 취급의 거부·정지 또는 제한 명령 등 기존 제도의 엄정한 집행만으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가해자 특정은 인터넷 주소 등의 추적 및 확인 등을 통해 가능하다. 타인의 컴퓨터 또는 아이디(ID)를 이용하는 경우 가해자 특정의 어려움은 실명제를 재도입하더라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제다.
무엇보다 실명제는 시장의 왜곡을 조장함으로써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실명제 시행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유튜브를 실명제가 필요한 게시판으로 지정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유튜브는 실명제를 채택하지 않는 대신 사이트에서 국가를 한국으로 설정하는 경우에는 동영상 및 댓글 업로드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이런 조치로 인해 유튜브는 더 이상 실명제 대상이 되지 않았고, 많은 내국인은 국가 설정을 바꿔 동영상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것이 가능한 유튜브로 대거 이동했다. 결국 인터넷 실명제는 현재 유튜브가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터전을 제공한 셈이다.
결국 국내 사업자나 유튜브·페이스북 등 국외 사업자 모두 국내 이용자를 상대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국내 업체에만 과중한 규제 비용을 지급하게 함으로써 불리한 경쟁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대표적 인터넷 규제 실패 사례로 회자된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거론된 계기는 ‘드루킹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 조작은 명백한 범죄 행위인 만큼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드루킹 사건을 볼 때 가해자는 드루킹과 그 배후다. 직접적 피해자는 댓글 조작으로 인해 정상적 서비스가 왜곡됨으로써 신뢰가 추락하고 그 결과 심각한 업무 방해가 초래된 네이버라는 기업이다. 정말 중요한 피해자는 이런 댓글 조작으로 인해 부정확한 콘텐츠를 접한 이용자들이다.
댓글에 대한 공권력 행사는 합당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비난의 화살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크게 가해지고 있는 듯하다. 댓글 조작의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답답함은 별개로 치더라도 가해자가 엄정히 처벌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댓글 조작뿐만 아니라 댓글을 이용한 명예훼손, 모욕 등도 마찬가지다.
위헌 결정이 밝힌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채 실익도 없고 국내 기업의 경쟁력만 약화시킨 실명제가 또다시 댓글 조작의 명약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인터넷 통제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주완/임현우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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