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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코노미] "30년 장사 접어요"…미군 짐 싸자 색깔 잃어가는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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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이전에 폐업·공실 ↑
'외국인 거리' 특색은 희미해져




“지금 이태원에선 ‘장사를 접어야겠다’며 한숨짓는 터줏대감이 많습니다.”(자영업자 L씨)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녹사평대로에서 20여 년 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R신발 전문매장이 지난해 12월 폐업했다. 동대문에서 보세 신발을 떼다 팔던 업주 A씨는 주변에 2~3층 규모의 대형 의류 매장이 들어서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용산 미군 기지 평택 이전이 시작되면서 미군 단골손님의 발길도 뚝 끊켰다. 거리를 찾는 20~30대 젊은이들은 카페나 유명 맛집만 찾을 뿐 A씨의 가게에 들르지 않았다. 장사가 안되니 매달 300만원 가까운 임대료를 부담하기 버거웠다. 건물 앞 노점상 상인 L씨는 “수천만원씩 권리금을 내고 들어왔지만 고스란히 포기하고 장사를 접고 떠나는 이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대로변 폐업·공실 증가

20일 찾은 이태원 녹사평대로. 작년 이맘때와 달리 거리 곳곳에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문이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까지 대로변에 맞닿은 50여 개 건물 중 1층 상가가 공실인 건물이 5개가 넘었다. 지상층 공실까지 합치면 비어있는 점포수가 더 많다. 이태원에서 30여 년 가까이 사설환전소를 운영해온 K씨는 “경기가 어려워지자 이태원에서 수십 년간 장사했던 소상공인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며 “인근 상인 중 내 나이 정도 먹은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태원역 인근 상점 폐업률은 창업률을 훨씬 웃돌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태원역 인근 상점 폐업률은 4.2%를 기록했다. 홍대입구역과 명동역 인근 상점 폐업률(각각 2.5~3.6%와 1.8%)에 비해 높았다.

상가 공실률도 서울시 평균을 훨씬 웃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이태원 일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1.8%를 기록했다. 스포츠의류 등 2~3층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서면서 3분기(19.1%)보다 감소했지만, 서울 도심 지역 공실률(4.4%)보다 높았다. 윤우용 원빌딩 이사는 “임대료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점포를 정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공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3.3㎡당 17만4000원 정도였던 이태원 일대 1층 상가 평균 임대료는 올해 1분기 들어 16만3000원 대로 하락했다. 이곳 상가 임대료는 지난해 2분기 정점을 찍고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 부동산전문가는 “이태원 상권 위축 상황이 지가에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럼에도 임대료 시세가 여전히 높은 편이라 앞으로 공실이 더 나오며 조정기간을 거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거리 특색 옅어지는 추세 ”

이태원 일대는 매해 25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거리였다. 1997년 서울시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용산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과 부대 관련 종사자덕분에 수요가 꾸준했다.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이곳에 자연스레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수입 제품 상점이 들어섰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려는 내국인들도 가세하면서 불황을 모르는 상권이 됐다.

하지만 용산 미8군이 지난해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이태원 거리를 찾는 외국인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태원 거리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P씨는 “미군에 대한 의존도가 30% 정도고, 나머진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들이 차지했다”며 “미군의 공백이 생각보다 크다”고 말했다.

이국풍 식당이나 카페가 사라진 자리엔 국내 프렌차이즈가 들어서고 있다. 이태원역 반경 50m 안에 프랜차이즈 화장품 가게만 10여 개가 넘는다. 이태원역 인근 M공인 관계자는 “마진율이 높은 화장품 가게 등이 들어와 주변 지가와 임대료를 많이 올려놨다”며 “외국 음식을 파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다 외국인과 자연스레 대화를 트는 그런 모습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골목 상권도 예전만 못해

이태원 상권의 인기는 경리단길 해방촌 등 인근 골목상권의 부상을 이끌었다. 대로변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아지자 자영업자들이 인근 골목길로 이동하면서 신흥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골목의 다가구주택 1~2층은 속속 식당이나 카페로 변신했다.

하지만 최근들어선 골목 상권마저 활기를 조금씩 잃어가는 분위기다. 경리단길 일대 1일 평균 유동 인구수는 올들어 감소 추세다. 지난해 12월엔 1만5000여 명이었으나 올해 1월엔 1만3400여 명, 2월엔 1만2790여 명으로 감소했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호황이던 경리단길 유입 인구가 인근 해방촌으로 이동하는 등 상권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동안 임대료가 꾸준히 상승한 탓에 부담을 느끼고 폐업하는 점포가 하나둘씩 나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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