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회<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jhlee0110@gmail.com >
과학의 발전은 많은 신종범죄 출현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과거에 없던 새로운 수사기법으로 범죄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DNA 데이터베이스로 2001년 전남 나주 드들강에서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된 여고생의 한을 16년 만에 풀 수 있었다. 전기합선으로 결론 내린 화재사건은 9년 뒤인 2011년 새로운 제보와 정밀 화재감식을 통해 아버지가 불을 질러 4세 아들을 살해한 것임이 밝혀졌다.
필획과 필압을 비교하는 문서감정에 잉크 성분 분석까지 추가되자 약속어음에 몰래 가필한 위조범행이 드러났고, 노숙자를 속여 카드사에서 대출을 받은 사기꾼은 녹음된 음성의 성문분석으로 덜미가 잡혔다.
전문가를 불러 영상파일을 없앤 의사는 삭제파일 복원기술 앞에서 환자가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사망했음을 고백해야만 했고, 화질 개선기술로 드러난 폐쇄회로TV(CCTV) 속 피해자의 생존반응은 연이어 피해자를 역과(轢過)한 교통사고에서 어느 차량에 의해 피해자가 사망했는지 가리는 데 결정적 증거가 됐다.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를 복원해 대출브로커의 검은 커넥션을 밝혀내고, 가상 드라이브에 은닉한 기술유출 자료를 찾아낸 것은 디지털포렌식의 성과다. 해외 서버를 이용해 추적을 피한 거액의 도박사이트 운영자도 IP 추적을 통해 속속 검거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수사는 사건 해결의 만능열쇠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2004년 대규모 사상자를 낸 스페인 열차 폭탄테러 사건에서 FBI는 알카에다 조직원이 되려 했던 남성의 지문이 현장지문과 비슷한 것으로 확인되자 추가 감정 없이 그를 체포했다. 하지만 몇 주 뒤 스페인 경찰은 다른 진범을 검거했다. 독일 경찰은 1993년부터 16년간 이어진 6건의 살인사건 현장에서 동일한 여성 DNA가 발견되자 얼굴 없는 여성 연쇄살인범 ‘하일브론(Heilbronn)의 유령’을 검거하고자 대대적인 수사를 했다. 그러나 이후 그 DNA는 DNA 채취에 사용된 면봉의 제작 과정에서 이미 묻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2년 미국에서는 성폭행범과 인상착의가 같아 범인으로 지목된 한 남성이 현미경에 의한 모발 비교를 통해 진범으로 인정돼 징역 80년을 선고받았다가, 2016년 DNA 검사를 통해 무고함이 밝혀져 25년 만에 석방됐다.
이들 사례는 과학수사를 활용하는 인간의 오류나 편견에 의해 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사법의 영역에서 과학적 분석을 거쳤다는 이유로 증거를 맹목적으로 수용한다면 과학의 이름을 빌린 증거는 오히려 정의를 위협하는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류와 편견의 개입을 차단하고 고도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확보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다음 회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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