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무를 통해 시간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묵묵히 채워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욕망 분출구인 부동산 분야를 취재하는 현직 경제 일간지 기자가 느리고 기다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무의 목소리를 전하는 책이 출간됐다.
《나무에게 나를 묻다》는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하지만 나무라는 공통된 매개체를 통해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다섯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이들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 인간과 분리할 수 없는 나무, 침묵으로 이야기하는 나무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제주 환상숲 곶자왈공원의 이지영 숲 해설가,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운영하며 나무의 빛을 담는 원종호 사진가, 괴산 알마기타공방에서 수제기타를 만들고 있는 김희홍 명인, 단양 정향나무농장에서 멸종위기 토종 라일락을 복원하고 있는 전직 기자 김판수 씨, 서울에서 우드카빙공방 어제의 나무를 운영하며 나무를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남머루 나무작업가…. 이들은 돈을 좇지 않고도 인간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과 가진 짧은 여행에서 갈등, 외로움, 쓸쓸함, 용기, 소통이라는 감정에 어울리는 나무들의 일생을 읽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에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발밑과 등 뒤를 돌아보라고 조심스럽게 전한다.
곶자왈공원에서 숲은 고요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이 반복되며 삶을 완성해나가는 장소다. 흙이 아니라 용암이 흘러 생겨난 특이한 생태환경에서 이뤄지는 사계절이 식물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는지, 우리는 얼마나 한 곳만 고집하며 살고 있는지 일깨워준다.
자작나무숲에서는 정형화되지 않은 나무와 오직 침묵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쓸쓸함을 직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알마 기타공방에서는 오랜 시간을 살아낸 나무가 아름다운 소리를 울리는 악기가 되기 위해 다시 숱한 기다림을 견디고 있다. 이곳에선 여러 종류의 나무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 최고의 소리에 다가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단양 정향나무농장에는 십여 년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토종 정향나무 복원에 힘쓴 남자가 있다. 그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며 경제적 풍요를 위해 놓치고 살아온 작은 역사를 되돌아본다. 공방 어제의 나무에서는 쉼 속에서도 ‘목적’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게 제대로 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저자는 하루하루 ‘버틴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팍팍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에게 나무의 말을 들려준다. 저자는 말 한다. 이 책을 펼쳐든 이들이 숲의 치열함과 생명력에 조금 감동할 수 있다면,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잠시 고개 끄덕일 수 있다면, 좋은 소리를 위해 수백 년을 기다린 나무에 경외심이 든다면 나무에게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다고 말이다. (정상희 지음, 아마디아, 246쪽, 1만3800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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