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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90년대 복고열풍… 3040세대들의 영원한 '마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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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경 기자 ]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에 가져갔다.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건넨 홍차에 적신 마들렌. 촉촉하게,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지며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온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시작 부분이다. 굳이 꺼내려 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에 머물던 기억이 툭 튀어나오고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과거 좋아했던 노래를 우연히 듣거나 추억이 있는 장소에 가게 됐을 때 등이다. 이 소설에서 따온 ‘마들렌 효과’ 또는 ‘프루스트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요즘 들어 많은 사람이 또 한 번 달콤한 ‘마들렌’에 빠져들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복고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2011년 영화 ‘써니’로부터 시작됐다가 2012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거세게 불었다. 이후 뜸했다가 2016년 아이돌 1세대 젝스키스가 컴백하면서 들썩였다. 다시 불쑥 찾아온 복고 열풍은 예전보다 더 집단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H.O.T(사진)부터 솔리드, 신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그룹이 활동을 본격 재개했다.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을 찾아내 무대에 세우는 JTBC 예능 ‘슈가맨’도 지난 1월부터 시즌2를 선보이고 있다. 단순한 추억 팔이, 일시적인 현상처럼 보였던 복고가 마들렌 같은 매개체가 돼 대중의 잠자던 기억과 감각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분명 과거에 들었던 노래, 보았던 춤이라 식상할 법도 하다. 하지만 폭발력은 막강하다. MBC 예능 ‘무한도전’을 통해 17년 만에 뭉친 H.O.T의 콘서트는 자리가 2500석인데 신청자가 17만 명에 달했다. 22년 만에 재결합을 선언한 솔리드 콘서트는 티켓 판매 5분 만에 2600석이 매진됐다. ‘슈가맨’이 방영되는 매주 일요일 밤엔 출연 가수들의 노래가 멜론 등 각종 음원 사이트의 상위권에 오른다.

이런 흐름에서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복고 열풍이 유독 1990년대 후반에 집중돼 있고, 노래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 이론과 연결된다. 한 사람의 기억 중 60% 정도가 15~25세 때 일들이고, 이 시기를 회고 절정이라 부른다. 현재 주요 문화 소비층인 30~40대가 이 나이였던 시기가 1990년대 후반에 해당한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시장에선 집중적으로 1990년대 후반 노래와 인물을 발굴하고 있다.

한국 문화사 측면에서도 의미가 남다른 시기다. 이때 아이돌이 처음 등장하고, 솔리드나 원타임처럼 R&B와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나왔다. 문화적 다양성이 역동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또 드라마나 영화보다 노래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건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즉각적으로 뇌를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선 1980~1990년대 인기 있던 음악과 디스코 등이 인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온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이란 부분이 다시 떠오른다. 경제 침체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 복고 열풍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지 않을까.

미국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소셜 애니멀》에서 “사람은 세상에 딱 맞는 자신의 내적인 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후반부는 세상이 자신의 내면 모델에 딱 맞도록 세상을 조정하면서 보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세상은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렵다. 때론 침울하고, 서글픈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복고’라는 이름의 오래됐지만 친근한 나만의 마들렌을 통해.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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