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미국 '통상 갈등' 악화일로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맞불
구글·페이스북·애플 등 겨냥
이익 아닌 매출에 세금 3% 부과
연 50억유로 징수안 이번주 발표
[ 김현석 기자 ]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대서양동맹’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이란 핵합의 파기 위협,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증액 요구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달 들어서는 양측이 무역정책과 세제정책을 놓고 맞부딪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산을 포함한 모든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25%, 10%의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자 EU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리스트를 발표했다. 이어 EU가 구글 등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을 겨냥해 막대한 세금 부과를 추진하자 미국이 반발하고 나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충돌이다.
◆‘디지털세금’ 카드까지 꺼낸 EU
EU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미국 IT 대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50억유로(약 6조6000억원)가량의 ‘디지털세금’을 징수하는 방안을 이번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디지털세는 유럽에서 올린 이익에 과세해온 기존 전통을 깨고 매출에 세금을 매기는 것을 말한다. 구글 등의 디지털광고 매출, 애플 등의 서비스 구독료 등이 대상이며 세율은 3%가 유력하다.
미국은 반발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미국의) IT 기업을 지목해 부과하는 어떤 국가의 세금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며 “이들 기업은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EU 측은 “디지털세는 미국 IT 기업만을 목표로 한 게 아니다”며 “세계 100개 이상 기업이 과세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과세 대상은 글로벌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매출이 총 7억5000만유로 이상이면서 EU 역내 과세 소득이 5000만유로 이상인 기업이 될 전망이다. 유럽 본사가 아니라 실제 고객이 있는 지역을 기준으로 과세할 계획이다. 조세회피국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EU는 그동안 구글 등이 세금을 적게 내는 데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의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방침에 따른 갈등을 계기로 세금 부과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U 내 기업 실효세율은 평균 23.3%에 달하지만 IT 기업은 평균 9.5%에 그친다. 프랑스 등은 EU의 디지털세 추진이 너무 늦다며 불평해왔다.
◆철강 관세 면제 안 되면 맞보복
EU는 16일 보복관세 대상인 미국산 제품 200개의 목록을 발표했다. 오는 23일부터 미국이 EU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면 발효시킬 계획이다. 쌀, 크랜베리, 오렌지주스, 버번 위스키, 담배, 화장품, 의류 및 신발, 일부 철강, 모터사이클, 요트, 모터보트 등이 포함됐다. 수입액 기준으로 연평균 28억유로(약 3조7000억원) 규모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로 피해가 예상되는 EU 수출액 규모와 같다.
EU는 미국에 “중국이 철강 불공정 무역의 원흉이다. EU는 관세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도 보냈다. 세실리아 말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관세 면제를 위해 지난 10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협상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는 이번주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을 만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호주도 관세 부과 대상에서 뺐다. EU에 대해선 “로스 상무장관이 EU 대표와 미국을 상대로 한 커다란 관세와 (무역)장벽을 없애는 데 대해 대화할 것”이라며 압박해왔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여러 국가와 작업 중이고, 약간의 융통성이 있다”며 “(면제 협의) 마감일(22일)까지 담판을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EU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EU 일부 국가만 면제해줄 것이란 전망도 한다.
◆바람 잘 날 없는 ‘대서양동맹’
미국과 EU 간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EU 통합을 저해할 수 있는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선택에 “휼륭하다”고 말했다. 대서양동맹의 축인 NATO에 대해선 “쓸데 없다”고 비난해왔다. EU 동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락 오바마 정부가 타결한 이란 핵합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파리기후변화협정도 일방적으로 탈퇴해버렸다.
올해 취임 2년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EU 주재 미국대사 자리를 비워 놓고 있다. EU 중심국인 독일 주재 미국대사 역시 공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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