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물리학자'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별세
21세에 루게릭병… 전신마비 딛고
블랙홀 증발 이론 등 연구 업적
저서 '시간의 역사' 1000만권 팔려
[ 박근태 기자 ]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극심한 장애에 시달리면서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래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을 남긴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76)가 14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호킹 교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지 꼭 300년 되는 1942년 1월 8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열대병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였던 아버지가 의학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지만, 17세 나이에 옥스퍼드대 물리학과에 진학하며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21세에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른바 ‘루게릭병’ 진단을 받으며 인생에 큰 시련을 맞았다. 의사들은 그가 불과 몇 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휠체어에 의지한 채 컴퓨터 음성재생장치 도움을 받아 열정적인 연구활동을 이어왔다. 대학 졸업 후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4년 당시 32세의 나이로 역사상 최연소 영국왕립학회 회원이 됐다. 1979년에는 뉴턴의 뒤를 이어 루카시안 석좌교수직을 맡았다. 그는 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3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지루했던 삶이 갑자기 달라졌고 물리학에 더 심취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인은 블랙홀의 증발, 특이점 정리, 양자중력론 등 현대우주론의 흐름을 바꿔 놓는 혁명적인 이론을 잇달아 내놓았다. 1970년 수학자 펜로즈와 함께 블랙홀 내에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특이점 정리를 발표한 데 이어 1973년에는 블랙홀 연구에 양자역학을 도입해 블랙홀도 입자를 방출하며 질량과 에너지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결국에는 증발해 없어질 수 있다는 호킹복사(블랙홀의 증발이론)를 제시했다. 이들 이론은 이후 다른 과학자들에게 반박을 받았지만 호킹 교수는 이후 자신의 오류를 스스럼없이 밝혀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필진 고등과학원 교수는 “그가 제시한 호킹복사는 중력과 양자역학이 양립할 수 있느냐를 두고 학술적 논쟁을 붙였고 여전히 완전한 이론은 나오지 않았다”며 “호킹 교수가 제시한 이론 덕분에 40년 넘게 수많은 물리학 이론들이 등장하며 현대 우주론의 꽃을 피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대물리학 하면 떠오를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1988년 발간한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해 과학교양서로는 드물게 38개국에서 1000만 권 이상 팔렸다. SF영화 스타트렉과 심슨가족에 출연하거나 광고 목소리를 제공했고 2008년에는 민간 우주회사 버진 갤럭틱의 무중력 체험 실험에도 참여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불편한 몸이지만 지역 캠페인에 참여하고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민영화에 반대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고인은 1990년과 2000년 두 차례 한국을 찾았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3년 영국 케임브리지에 잠시 머무는 동안 이웃해 살면서 식사를 같이하기도 하는 등 친분을 쌓은 인연도 있다. 서울대 천문물리학과 교수 출신인 오세정 바른미래당 의원은 “호킹 교수는 학계가 모두가 맞다고 믿는 정설에 과감하게 태클을 걸고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고치는 보기 드문 학자였다”며 “과학의 기본 정신과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몸소 실천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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