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전쟁' 저자 김영준 씨
뜨는 상권, 중심상권 인접·접근성 좋고·오래된 주거밀집지
"젠트리피케이션 안 일어나면, 영원히 낙후될 수밖에"
서점에 나와 있는 자영업 관련 책은 창업을 하려면 알아야 할 전문적인 내용이나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는 성공담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출간된 《골목의 전쟁》(스마트북스)은 ‘쉬워 보여서 돈을 벌겠다’며 우르르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이 왜 망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준 씨는 네이버 경제 분야 인기 블로거로 ‘김바비’라는 닉네임이 더 유명하다. 본업인 보험 영업을 하는 짬짬이 블로그에 글을 남기며 주로 소비시장 분석을 한 게 11년째다. 경제학과 투자이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그의 글을 챙겨 보는 독자가 1만명에 달한다. 그는 “퇴사하고 창업을 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알고 하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표지에 ‘퇴사 준비생이 꼭 알아야 할 마켓 인사이트’라고 돼 있지만 다수의 독자가 자영업자가 될 결심을 접었다고 한다. 퇴사를 해야 하나.
“퇴사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다만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을 나이브(순진)하게 보는 경향이 많다. 사업을 투기적 마인드로 보지 말고 투자적 마인드로 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공급 과잉 시대다. 상품을 만드는 생산자는 많지만 좋은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사업자는 적다. 어중간하게 평균 이하의 생산자가 된다면 고사할 수밖에 없으니 각오를 확실히 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투기적 마인드와 투자적 마인드 차이는.
“벤자민 그레이엄은 《현명한 투자자》에서 ‘투자할 때는 사업하듯이 하라’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사업하면서 투자처럼도 안 한다. 수요와 공급을 파악해야 하고 트렌드도 읽어 준비하고 들어가야 한다. 대개 사업하는 사람들은 단기 전망만 보고 만다. 책에서 쓴 연어와 대만카스테라도 같은 사례다. 극히 단기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인데도 사람들은 지속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또는 오래 못 가더라도 권리금이나 회수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투기적인 마인드다.”
▶‘뜨는 상권’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최근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라면 서울 망원·연남·성수·익선동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두 중심상권에 인접하고 대중교통(지하철) 접근성이 좋은 데다 오래된 주거 밀집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예외적으로 문래·성수동 일부 지역은 낡은 공장지대를 용도 변경하는 식으로 상권이 발전했다.
오래된 주거밀집 지역은 임대료가 싸다. 또 주택의 용도변경과 개조가 쉽다. 대중교통인 지하철이 인접한 곳은 유동인구가 많다. 상권이 형성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 단지는 새로운 상권을 키워낼 인큐베이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중심상권에 인접해 형성되는 이유는 새로 형성된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피난지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은 압구정 로데오의 대안, 경리단길과 해방촌은 이태원의 과열 현상으로, 홍대는 신촌의 대안으로 각각 떠올랐다. 상수·합정·연남·망원동은 홍대 인근의 임대료가 상승하자 부상한 곳들이다.
현재는 1980년~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골목의 주택들이 상가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10년 뒤에는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주택이 상가로 변해 상권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이 만든 복합쇼핑몰이 골목상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다고 했는데.
“복합쇼핑몰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다. 디벨로퍼의 경쟁자는 골목길의 건물주들이다. 장사하는 자영업자가 아니다. 복합쇼핑몰은 기존 도로나 골목이 확장돼 만들어진 게 아니라 상권 자체를 기획하고 만든 거다.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적절한 동선을 짜고 그 안에 상점을 배치하면서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상권을 형성한 복합쇼핑몰은 상가 입점을 받는다. 복합쇼핑몰의 본질은 임대업이다. 경쟁자는 골목의 상점과 세입자가 아니라 인근 또는 유사한 지역의 상권 자체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합정역 인근 복합몰 메세나폴리스의 경쟁자는 합정 일대의 또 다른 상권 그 자체다.
복합쇼핑몰이 하나 생기면 인근 골목상권 상점들이 피해 본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상가 소유주 입장에선 쇼핑몰 공급이 생기면 임대료를 낮춰야 할 유인이 생긴다. 복합쇼핑몰이 들어섰다고 인근 상가도 덩달아 임대료를 올려서 대형 프랜차이즈만 유치하자고 치자. 그게 접근성이 더 좋고 편리한 복합쇼핑몰과 경쟁이 되겠나.”
▶6장에서 대로(大路)가 전자상거래 발달로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고 분석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상거래의 발달 때문이다. 과거라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대로의 매장에서 판매됐을 상품들이 지금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팔린다. 온라인 거래는 입지의 우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 결국 대로변에 있는 가게에서 구매하는 물건들은 고가 상품이거나 당장 급하게 사야 하는 상품으로 제한되고 있다. 유동인구와 상가 방문객은 큰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그 중에서 물건을 사는 구매율은 하락한다.
대형 유통업이 큰 타격을 받는다. 미국에서도 아마존 등장 이후로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전망이 좋지 않다. ‘아마존의 등장이 유통업체들을 몰락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이커머스 등장 전이라면 주요 상권의 넓은 공간은 유통업이 자리를 하는 게 맞았다. 유통업은 회전율이 좋아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다. 또 더 넓은 매장이 있어야 다양한 상품을 구비할 수 있어서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런데 대형 유통 상점을 기준으로 유통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점점 축소되는 현실이다.”
▶‘스타벅스 이펙트’라는 말도 있는데 대형 프랜차이즈가 상권과 건물의 가치를 올릴 수 있나.
“개인적으론 스타벅스 효과를 부정적으로 본다. 스타벅스의 입점 전략은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로 요약된다. 핵심 상권이나 주요 상권에 점포를 집중시켜 해당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커피라는 일상재를 파는 곳이다. 스타벅스를 찾아 먼 곳에서 굳이 오는 사람은 없다. 스타벅스의 점포수가 1000개를 넘는 상황에서 주변 지역 상점 매출을 끌어올려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스타벅스는 건물주 입장에서 키테넌트 역할을 한다. 스타벅스 임대계약에는 매출의 일정 비율(평균 12% 가량)을 임대료로 지불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점포당 평균 매출이 연 10억원으로 다른 프랜차이즈 경쟁사의 2~4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임대료 수입이 올라가니 건물 가치도 상승하는 건 맞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 스타벅스가 입점해서 상권 전체의 임대료가 올랐다면 그동안 지역의 가치평가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는 반증일 뿐이다.”
▶7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통념과 달리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원래 낙후된 지역이 재생·발전하면서 중상류층이 진입하는 경향을 나타낸 말이다. 주거지역의 개발 및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쓰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상업지역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도시 개발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짧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나쁜 게 아니다. 민간 수준에서 이뤄질 수 있는 지역 개발이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지역이 영원히 낙후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역이 발전하면 임대료는 오를 수밖에 없다. 어느 비즈니스건 한 자리에서 영원불멸하게 장사를 할 수도 없다. 변화는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거다. 다만 너무 빠르고 한 방향으로 획일화되는 게 문제다. 전문용어로는 ‘듀플리케이션’이라고 한다. 너무 빠르게 변하면 정작 생태계를 만든 세입자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내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빠르게 변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나.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자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사람들이 쉽게 내몰리는 것은 막아야 할 일이라고 본다.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기간은 확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10년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임대인들은 자기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정확한 밸류에이션을 해야한다. 임대료가 과하게 올라가거나 공실이 생기는 경우는 임대인들이 자기 자산 가치를 잘못 판단한 데서 비롯된다. 이커머스가 활성화 되면 상업 부동산은 결국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과거엔 입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겨졌다. 이커머스 발달은 입지라는 요소를 약화시키고 있다. 비즈니스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과대평가 하는 일은 자제하는 게 맞다고 본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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