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0년 전 조상과 후손을 포함한 1300만 명의 가계도(family tree)를 분석한 결과, 수명은 유전자보다 생활 방식과 주변 환경에 더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게놈센터와 컬럼비아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 내용이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의 족보 빅데이터를 통해 이런 사실을 밝혔다. 장수 유전자가 수명에 영향을 준다면 친족 관계에서 유전적 우성이 증폭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족보 데이터에 따르면 서구인의 대부분은 1850년까지 8촌 이내 친족과 결혼했다.
이와 달리 성호르몬 역할이 수명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던덴마크대학의 버지니아 자룰리 교수는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게재한 논문에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면역 기능을 강화해 병을 예방하고 세포 손상을 막아준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긴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무병장수는 전 인류의 꿈이다.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는 노화의 열쇠를 우리 몸 속 세포인 ‘텔로미어’가 쥐고 있다고 얘기한다. 텔로미어는 우리 세포 속 염색체의 양 끝단에 있는 구조를 말한다.
그는 신간 《늙지 않는 비밀》에서 염색체 손상을 막는 텔로미어가 닳아서 짧아지면 세포가 분열을 멈춘다고 설명한다. 이 세포가 짧으면 노화가 진전되고, 길면 암·심장병 등에 의한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걸 막는 게 장수의 비결이다.
놀라운 것은 짧아진 텔로미어가 다시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텔로미어를 만들고 보충하는 효소 ‘텔로머라아제’ 덕분이다. 이는 닳아 사라진 염색체 끝에서 새로운 세포분열이 이뤄지도록 돕는다. 텔로미어의 회복을 돕는 방법은 뭘까.
그는 텔로미어가 스트레스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가장 나쁜 것은 두려움이나 불안 등을 동반한 ‘위협반응’이다. 혈관이 수축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압이 오른다. 손발도 차가워진다. 이럴 때는 ‘위협반응’을 ‘도전반응’으로 바꾸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한다.
남을 적대시하고 비관주의에 빠지면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들고, 나쁜 감정을 걸러내면 건강수명이 길어진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1주일에 세 번, 45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하루 7시간 이상 숙면하라는 조언까지 들어 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진리는 뻔한 데 있다. 82세에 《파우스트》를 완성한 괴테도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생활을 가꿔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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