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신고만 하면 설립
너도나도 영업…피해 속출
불법행위 처벌 규정도 필요
법무부 "투기상품 불과"
한국은행 "제도화 신중해야"
[ 신연수 기자 ]
대한변호사협회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가상화폐거래소만 정부가 허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부가 전면 금지하고 있는 신규 가상화폐공개(ICO)는 조건부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를 보호하면서도 차세대 주요 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대한변협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법적 측면에서 본 가상화폐 제도화 및 이용자 보호’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의 ‘가상화폐 거래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세미나는 대한변협과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후원했다.
발표자로 나선 이광수 대한변협 법제위원은 “아무 기준 없이 영세 사업자나 기업이 가상화폐거래소 설립에 뛰어들면서 사기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거래소는 정부에 신고만 하면 설립할 수 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수수료 4만원만 내면 통신판매업자 자격으로 거래소 영업이 가능하다. 대한변협은 거래소 설립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상법에 따른 주식회사 자격 △20억원 이상 자기자본 보유 △가상화폐 매매업을 수행하기 위한 충분한 인력·물적 설비 보유 △건전한 재무상태 등이다. 해당 기준을 충족했는지는 금융위원회가 판단한다.
대한변협은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시세조종 행위에 대해서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의 다섯 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또 50억원 이상의 부당이익을 거뒀을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가중 처벌 규정도 뒀다.
세미나에 참석한 일부 전문가도 정부의 과도한 규제는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내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가상화폐 매매자를 현실적으로 외면할 수 없다”며 “거래소 등록 요건을 강력하게 해 충족 여부만 정부가 엄격하게 심사하는 등록제가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수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은 “정부가 과거 대부업을 규제하기 위해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강화했지만 오히려 ‘지자체에 등록된 대부업체’라는 광고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낳았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하지만 세미나에 참석한 법무부와 한국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거래소 입법화에 반대했다. 심재철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은 “가상화폐는 국가의 법정통화와 달리 법에 의한 보호장치가 없는 투기상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종렬 한은 전자금융부장도 “별도의 규제 입법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가상화폐를 제도화하겠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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