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3만달러 시대엔 너무 가벼운 경차?
경차 전성시대 끝나나
지난해 경차 비율 10% 아래로
GM스파크는 판매 40% 급감
외환위기·2008년 경차기준 완화
'두번의 전성기' 누렸지만 국민소득 증가·유가하락 겹쳐
가성비 좋은 SUV로 갈아타
[ 도병욱 기자 ] 거리에서 경차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과거 모델명 앞에 붙던 ‘국민차’ ‘서민의 발’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다.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경차의 경제적 이점을 공유하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전기자동차 등의 판매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번의 경제위기로 급성장
18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경차는 14만7465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2016년의 18만4248대에 비해 20.0% 줄었다. 특히 국내 경차 판매량 2위인 한국GM 스파크의 지난해 판매량(4만7224대)은 전년(7만8035대) 대비 39%나 급감했다. 이 같은 판매량은 경차 기준이 배기량 800㏄ 미만에서 1000㏄ 미만으로 조정된 2008년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경차가 전체 차량 판매량 가운데 차지한 비율도 9.5%에 그쳤다. 역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0%를 밑돌았다.
한국 경차의 역사는 1991년 대우자동차가 내놓은 티코에서 시작한다. 출시 초기에는 ‘고속도로에서 달릴 수나 있을지 걱정’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판매량은 기대 이상이었다. 출시 첫해인 1991년에만 3만1781대가 팔렸고, 이듬해에는 5만9522대가 판매됐다.
연간 경차 판매량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처음으로 15만 대를 넘어섰다. 그해 국내에서 팔린 차량 가운데 22.3%가 경차였다. 대우차 마티즈와 현대자동차 아토즈, 기아자동차 비스토 등이 그 주역이었다. 하지만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자 경차는 된서리를 맞았다. 2003년 경차 판매량 비율은 4.1%까지 떨어졌다. 티코와 비스토, 아토즈는 줄줄이 단종됐다.
두 번째 전성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작됐다. 여기에 당시 정부가 유럽 및 미국의 경차 기준(1000㏄ 미만)과 한국 기준(800㏄ 미만)이 달라 수출용과 내수용을 따로 개발해야 해 부담이 크다는 업계 주장을 수용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경차 기준이 1000㏄ 미만으로 완화되자 소형차로 분류됐던 기아차 모닝이 경차에 편입됐다.
이 여파로 2012년에 사상 처음으로 경차 판매량이 20만 대를 돌파했다. 과거 소형차로 분류됐던 990㏄대급 차량을 구매해도 취득·등록세 면제, 자동차세 감면, 유류세 환급 등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강점으로 부각됐다.
◆반전 계기 있을까
한동안 경차 판매량은 연 15만 대를 웃돌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4만7465대로 떨어졌다.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진 게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과거 통계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GNI)과 경차 판매량은 반(反)비례 관계다. 업계 관계자는 “작은 차는 안전하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어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경차를 구매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도 경차 판매량 감소를 부추겼다. 2010년대 초 L당 1900원을 넘었던 국내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연평균 L당 1500원 아래로 떨어졌다. 기름값 부담이 줄자 유류세 환급 혜택이라는 장점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소비자들이 경차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차종도 계속 나오고 있다. 연비에 민감한 소비자는 전기차를, 작은 차체를 좋아하는 소비자는 소형 SUV를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친환경차 판매량은 9만7486대로 전년 대비 41.6% 늘었다. 경차와 소형 세단이 양분하던 ‘생애 첫 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소형 SUV도 1만5422대가 팔렸다. 2016년보다 29.1% 증가한 규모다. 높은 시야와 넓은 적재공간 등 SUV 특유의 강점도 경차를 압도하고 있다.
올해도 상황 반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경차 인기를 시들게 한 요인은 그대로다. 올해 1인당 GNI는 3만달러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제 유가가 2010년대 초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은 나오지 않는다. 한국GM 철수설이 불거지면서 스파크 판매량이 더 줄 가능성도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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