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파 수집·분석에 필요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가
가상화폐 채굴에 동원되면서 가격 두 배로 뛰고 품귀현상
미국·영국 전파 관측 연구 차질
[ 박근태 기자 ] 세계 각국에서 가상화폐 바람이 거세지면서 애꿎은 과학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방대한 정보를 계산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이 가상화폐 채굴에 쏠리면서 제때 과학 장비 성능을 개선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세티)’ 프로젝트 네트워크는 최근 전파 관측소 두 곳을 추가로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방대한 계산에 필요한 컴퓨터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세티란 전파망원경으로 먼 우주로에서 쏟아지는 전파를 수집해 이 가운데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다. 블랙홀이나 초신성 폭발 같은 자연적인 천문현상에서 외계인이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호를 분리하려면 방대한 계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로 보낼 주파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주파수를 동시에 분석하려면 막대한 계산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외계 신호 분석에는 세계 곳곳의 연구자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자가 제공한 컴퓨터까지 사용된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520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자신의 컴퓨터를 신호 분석에 빌려줬다.
최근에는 게임 등에 사용하는 GPU와 같은 고성능 컴퓨터칩이 사용되고 있다. GPU를 쓰면 일반 컴퓨터중앙처리장치(CPU)를 썼을 때보다 자료 분석 시간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세티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UC버클리도 세계 곳곳의 관측소에서 보낸 신호를 분석하기 위해 GPU 100개가 들어간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에는 주요 컴퓨터칩 회사인 인텔과 IBM, 엔비디아 등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열풍이 불면서 고성능 GPU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 채굴이 늘면서 GPU 공급이 부족해진 데 따른 것이다. 세티 프로젝트 네트워크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그린뱅크와 호주 파크스 두 곳에 데이터 분석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필요한 GPU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댄 월티머 UC버클리 천문학과 수석연구원은 “전파망원경이 우주로부터 수집한 신호를 분석하기 위해 최신 GPU를 사용하고 싶지만 확보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가상화폐 이더리움 채굴이 급격히 늘면서 GPU 가격이 폭등했다. 다른 연구팀에서도 GPU 품귀 현상으로 연구에 차질을 빚고 있다. 애런 파슨스 UC버클리 교수 연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별과 은하가 형성되기 전 수소가스가 방출하는 저주파 전파를 관측하는 ‘수소 재이온화 어레이(HERA)’라는 전파망원경을 제작하고 있다. 모두 19개로 구성된 전파망원경에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려면 GPU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지난해 말 GPU 한 세트당 500달러의 구매 예산을 책정했지만 현재는 가격이 두 배로 폭등했다. 연구진은 가격 폭등으로 3만2000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 시장에서도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GPU 업체인 엔비디아는 이달 초 “시장에 충분한 양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공급을 원활히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가상화폐 열풍으로 인해 과학 연구에서 GPU 품귀 현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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