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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GS의 '신사협정'이 깨진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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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형 산업부 기자) GS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국내 2위 정유사인 GS칼텍스가 지난 7일 석유화학 사업 본격 진출을 선언한 것을 놓고 재계에서 ‘영원한 상호 불가침 조약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이날 전남 여수 제2공장에 2조여원을 투자해 올레핀 생산시설(MFC)을 짓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올레핀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과 폴리에틸렌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비닐 같은 석유화학제품 대다수의 기초 원료로 쓰입니다. 올레핀은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를 가공하는 나프타분해설비(NCC)가 필요해 그동안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전통적인 석유화학업체들이 주도해온 시장입니다. LG그룹의 화학계열사인 LG화학은 220만t 규모의 NCC를 보유한 국내 1위 화학업체 입니다. 결국 GS칼텍스 MFC가 가동을 시작하는 2022년부터는 GS칼텍스와 LG화학의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GS그룹과 LG그룹의 관계입니다. 사실 두 그룹은 뿌리가 같습니다. 1948년 사돈지간인 구인회 씨와 허만정 씨가 3대 1의 비율로 돈을 대 회사를 설립한 것이 바로 오늘날 LG그룹과 GS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입니다. 두 집안은 60년 가까이 동업을 이어가다 2004년 7월1일 자로 허창수 회장이 GS그룹을 설립하면서 둘로 나뉘었습니다. 허 회장은 GS그룹 출범 당시 “적어도 내 대(代)에서는 LG가 하는 사업분야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화답하듯이 LG 구본무 회장도 GS그룹 출범식에 참석해 “지금까지 쌓아온 LG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도 더욱 발전시켜 일등 기업을 향한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재계에선 LG그룹과 GS그룹이 동종 분야에서 경쟁을 피한다는 암묵적인 신사협정을 맺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애초 그룹 분리 때부터 LG는 전자와 화학, 통신을 축으로 했고 GS는 정유와 건설, 유통 등 서로 다른 사업군(群)을 갖고 있었던 만큼 양사가 경쟁할 만한 업종도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유업의 성장성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GS칼텍스가 석유화학사업 강화에 나서게 됐고, 양사가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GS칼텍스가 이날 석유화학 사업 진출을 발표하면서 NCC라는 널리 알려진 명칭 대신 MFC를 사용한 것도 LG화학과의 사업영역 중복에 따른 부담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NCC의 하나인 MFC는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 뿐만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를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설비 가동 방식은 NCC와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GS칼텍스측은 “생산물량 대부분이 수출에 사용될 예정으로 세부 제품군은 LG화학과 다른 만큼 양사의 우호 관계가 훼손될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GS칼텍스의 MFC가 가동에 들어가면 LG화학은 당장 NCC의 원료인 나프타 수급부터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을 통해 86만t 규모의 NCC를 갖춘 SK이노베이션을 제외한 다른 정유사들은 그동안 원유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NCC 설비를 갖춘 석유화학업체에 판매해 왔습니다. 자신들에게 쓸모가 크게 없는 나프타였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GS칼텍스가 직접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MFC를 갖추게 되면 굳이 LG화학에 나프타를 판매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반대로 LG화학은 다른 공급선을 확보해야 합니다. 전남 여수공장의 LG화학 NCC는 나프타 대부분을 GS칼텍스서 공급받았습니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물류비도 저렴했습니다. 앞으론 이런 거래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격언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끝) /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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