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형에 맞는 굴착기 독자개발
도로공사 '신기술 R&D기업' 선정
"후대에 물려줄 기술 계속 연구"
[ 임근호 기자 ] “굴착 분야에서 후속 세대가 계속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원천 기술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경기 용인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윤영덕 코틈 대표(사진)는 “30여 년간 지하 굴착 현장에서 일하다 답답한 마음에 창업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표가 2015년 창업한 코틈은 저진동·저소음 지하 굴착 전문장비를 개발해 지난해 말 한국도로공사의 ‘신기술 연구개발(R&D) 기업’으로 선정됐다.
그는 “국내 지반 구조에 맞는 전문장비가 없어 아직도 현장에선 수직으로 땅을 파는 장비인 유압 브레이커로 지하 터널을 뚫는다”며 “작업 속도가 느리고 진동과 소음이 커 공사 비용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지하철이나 지하도로 공사를 할 때 대부분 화약으로 발파한 뒤 유압 브레이커로 수평면을 탕탕탕 두드려 쪼개면서 지하 터널을 뚫는다.
유럽에서 쓰이는 ‘터널 전단면 굴착기(TBM)’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윤 대표는 지적했다. TBM은 원판 모양의 톱니가 회전하며 암반을 깎는 긴 원통형 중장비. 진동과 소음이 작지만, 대당 400억~1000억원에 달한다. 윤 대표는 “TBM은 경도 8 이상 화강암이 많은 유럽 지역에 적합하다”며 “한국은 흙이 다져진 퇴적암 지형이라 TBM이 흙에 파묻히기 쉽다”고 했다.
개인사업자로 건설 장비를 빌려주거나 자신이 직접 장비를 조종해 공사 현장에서 일하기도 한 윤 대표는 굴착장비의 자체 개발에 나섰다. 아이디어를 들고 같이 일할 중견·중소기업도 찾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려움도 겪었다.
코틈의 첫 제품은 ‘푸시보링머신(PBM)’. 수평면 굴착에 맞게 구조 설계를 하고, 톱니 회전으로 흙과 암반을 깎아내는 장비다. 그는 “서울역~노량진 철길 지하화, 서부 간선도로 지하화 등 앞으로 도심에서의 지하화 사업이 많다”며 “이를 위해선 저진동·저소음 굴착 기계가 필수”라고 했다. 코틈은 현재 고려대, 건설기계부품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과도 R&D를 같이하고 있다.
윤 대표는 “이제 은퇴할 나이지만 개인 돈 5억원 이상을 장비 개발에 쏟아부었다”며 “개인적인 욕심보다 한국이 건설 기술 선진국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필리핀이 한국에 장충체육관을 지어줬지만 건설 후진국으로 전락한 것처럼 한국도 기술에 투자하지 않으면 앞으로 외국 기술과 장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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