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원/좌동욱 기자 ] 차등의결권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불을 댕겼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혁신자가 (지분 희석으로) 경영권을 잃을 위험 때문에 중소·벤처기업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는 데 주저하는 면이 있다”며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 국민과 신뢰를 축적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코스닥 차등의결권 허용에 유연하게 접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차등의결권 도입에 정부 고위 당국자가 공식적으로 필요성을 언급한 첫 사례였다.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 기업들이 경영권 걱정 없이 외부 투자를 받아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며 동조 의견을 내는 등 재계는 환영하고 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 위원장에게 ‘친정’ 격인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일 ‘정부의 차등의결권 도입 논의 신중해야’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중소·벤처기업에 한해 허용하더라도 나중에 대기업이 되면 창업자 후손들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부를 대물림받을 것”이라며 “과연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반해 나온 발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코스닥 차등의결권 도입은 ‘1주 1의결권’을 원칙으로 한 상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국회에서도 논란이 뜨거울 전망이다.
과연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야 할까.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부터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
찬성 - 경영권 걱정없이 투자 유치하려면 적대적 M&A 방어 수단 있어야
재투자에 사용될 자금이 자사주 매입에 소요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2004년 구글을 미국의 기술주 중심 주식시장인 나스닥에 상장할 당시 주주들에게 혁신성장을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1주당 10배의 의결권이 있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약 15%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63.5%의 의결권을 부여했다. 구글은 이후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미래 성장에 가치를 둔 투자를 지속했다. 2004년 대비 2016년 매출은 32억달러에서 903억달러로 28배, 고용은 3000명에서 6만 명으로 20배 증가했다.
이처럼 1주 1의결권의 예외를 허용해 일정 주식에 의결권을 더 많이 부여하는 것은 긍정적 파급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은 기업의 혁신과 성장에 필수요소다. 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한다. 오로지 기술 하나만으로 시작하는 자금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 벤처기업은 더욱 그렇다.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거나 직접투자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이나 담보가 부족한 벤처기업들에 자금을 쉽게 대출해줄 수 있는 금융권은 많지 않다. 투자 유치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다. 투자를 받으면 그만큼 창업가의 지분이 줄어들어 경영권을 위협받거나 경영권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투자받는 걸 꺼리는 이유다.
2016년 벤처기업의 신규자금 조달 중 은행 등 금융권으로부터의 대출은 12.3%에 불과하고 기업공개(IPO)는 한 건도 없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음에도 외부에서 자금을 받지 못하면 성장이 정체되거나 시장에서 사라져버린다. 벤처기업들의 3년 생존율을 보면 스웨덴 75%, 미국은 58%인 데 비해 한국은 38%에 불과하다. 이는 개별 기업의 단위를 넘어선 국가경제적인 손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리는 인수합병(M&A) 시장을 바로잡을 필요도 있다. 한국은 M&A 시장에서 공격과 방어를 위한 수단 간에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권 보호 장치를 없애고 경영권에 대한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 적대적 M&A 수단은 크게 늘었지만 방어하는 기제는 매우 부족해졌다. 1999년 타이거 펀드, 2003년 소버린과 헤르메스, 2005년 칼 아이칸 등 해외 투기자본이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며 수조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효율적인 방어 수단이 없는 한국 기업들은 자기주식 취득 등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기준 국내 상장벤처기업의 60%가 자기자본의 10%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설비 확충과 연구개발에 활용돼야 할 자금이 경영권 방어비용으로 나가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에서의 역차별을 시정해야 한다. 이미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스웨덴 덴마크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터키 등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국가에서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다. 안정된 경영권을 기반으로 자금조달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외국 기업들에 비해 제한적 수단밖에 없는 한국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혁신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차등의결권 도입은 그 출발점이다.
반대 - 벤처기업에만 차등의결권 허용해도 결국 대기업 세습에 악용될 수 있어
적대적 M&A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선 안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앞세운 재벌들이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추진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외국계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이 반기를 들었고, 이를 통해 상당한 이득을 챙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주장이 다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한 것은 삼성물산이나 제일모직의 경영권 확보와는 전혀 무관했다. 오히려 재벌 세습을 위한 계열사 간 불합리한 합병 비율이 엘리엇에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돈 벌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정경유착으로 국민연금마저 이런 불합리한 합병에 찬성하면서 기관투자가로서 선관의무(fiduciary duty)를 방기했을 때, 오히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가 소액주주의 권익에 부합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나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인 경영권 간섭 등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역시 잘못됐다. 적대적 M&A는 경영자의 일탈과 무능을 규율하는 자본시장 메커니즘의 일부이기도 하다. 또 최근 기업 성과에 대한 연구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긍정적인 역할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성공한 벤처기업들이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1994년부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가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회사의 상장을 허용해 줬고,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한 사례도 있다. 일본도 2005년에 상법상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2008년에는 상장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은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창업자에게만, 또 기업공개(IPO)를 할 때만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추가적 장치를 요구한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인용해 차등의결권 도입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오히려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금지하는 추세다. 2007년 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새로운 차등의결권 발행을 금지했고, 유럽연합(EU) 재판소는 2002년부터 차등의결권의 일종인 황금주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콩 주식시장이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할 것이라는 소식에, 기술주와 관련된 중소·벤처기업들에만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허용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벤처캐피털과 벤처기업이 부재한 우리 상황에서 차등의결권 주식 허용이 성공한 벤처기업을 양산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혁신의 기회가 사라지고, 혁신의 기회가 있어도 기술 탈취로 혁신의 유인이 없는 현실을 바꾸는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자생적인 벤처기업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벤처기업들에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면 재벌 3세나 4세들이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이 기업을 내부거래와 M&A 등으로 키운 뒤 소유지배구조를 변경해 기업집단 전체를 세습하는 데 악용할 것이 명확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수 있는 재벌개혁이지 차등의결권 허용 여부가 아니다.
임도원/좌동욱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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