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맡은 정형식 판사에 '노골적 비난' 봇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700건 넘어… 포털 검색 인기 검색어 1~5위
자질 시비·가족관계도 들춰
방송 출연 자칭 진보 인사들 '역대급 쓰레기 재판' 비난도
"사법부 독립성 훼손" 우려 목소리
[ 이상엽/고윤상 기자 ] 집행유예 선고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석방시킨 항소심 재판부를 향한 비판이 심상치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판장이었던 정형식 부장판사를 향한 특별감사 요구가 700건 넘게 게시됐다. 파면 주장에서 부처 석궁테러 언급까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와 협박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원색적 비난 난무… 파면청원 운동까지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의 돈인 국민연금에 손실을 입힌 범죄자의 구속을 임의로 풀어준 정형식 판사에 대해 이 판결과 그동안 판결에 대한 특별 감사를 청원한다’는 글이 등장했다. 해당 청원에 동의하는 사람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 ‘신기록’을 세울 태세다. 이 청원이 20만 건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청와대가 의견을 밝혀야 한다.
해당 게시판에 등록된 정 판사 관련 글은 6일 700건(오후 10시 기준)을 훌쩍 넘었다. 게시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판결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며 정 판사에 대한 반감을 노골화하고 있다. 일부 청원글은 법적 근거가 없는 파면 주장까지 버젓이 올리고 있다. 헌법에 따르면 법관 파면은 ‘그 직무 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가능하다. 국민의 법 감정과 상반되는 판결이라는 주관적 이유로는 파면이 불가능하다.
시민단체 등의 ‘장외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는 이날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 규탄’이란 제목의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부회장 항소심을 ‘국민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판결’이라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정연순 민변 회장은 “국정농단에 완벽한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 법대 교수는 “법조인답지 않은 정치적인 해석”이라고 우려했다.
◆사법부 독립·법치주의 훼손 우려
온라인도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5일 오후부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도 ‘정형식’ ‘정형식 부장판사’가 1~5위권을 오르내렸다. 이런 현상은 6일까지 계속됐다. 정 판사가 지금껏 해온 판결을 들춰 흠을 잡거나 가족 관계 등을 거론하며 자질 시비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진보 성향의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판레기(판사와 쓰레기의 합성어) 정형식이 삼성 면접을 봤다면서?’ 등의 조롱글이 쉽게 목격된다. 급기야 이날 법원 내부 인터넷 게시판에 ‘누가 석궁 만드는 법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기재돼 서울중앙지법에 한차례 소동이 일었다. 해당 게시글에는 ‘민중을 배신한 자는 사필귀정으로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라디오나 TV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일부 출연자와 방송진행자들은 ‘정경유착 넘은 삼법(삼성+법원) 유착’ ‘역대급 쓰레기 재판’ 등 공격적인 표현으로 판결을 폄하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판사 출신인 로스쿨 교수는 “판결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사를 비난하고 위협하는 것은 3권분립과 법치주의, 사법부 독립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엽/고윤상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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