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집행유예
코너 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부 "정유라의 말·차량 무상 사용 부분은 뇌물
직무관련성·대가성 인정"
특검, 이재용 상고심 총력…대법 전원합의체 회부 유력
[ 이상엽 기자 ]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라는 극적 반전을 이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근 1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상황이 만만치 않게 됐다는 평가다. 최순실 씨와의 공모가 인정된 데다 정치권력의 겁박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는 판단이 나와서다.
이 부회장 등의 항소심 재판부는 5일 ‘삼성 측의 부정한 청탁은 없었고 이 사건은 정경유착도 아니다’면서도 독일에 세운 코어스포츠에 건넨 용역대금 36억원과 최씨 측에 마필 및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은 뇌물로 인정했다. 특히 그 배경으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으며 최고 정치권력자가 삼성을 겁박해 뇌물공여가 이뤄졌다”고 질타해 이 부회장 측을 ‘피해자’로 해석한 반면 박 전 대통령 등은 사건의 ‘주범’으로 못 박았다.
2심 재판부가 영재센터 후원금과 재단 출연금의 뇌물공여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지만 승마 지원에 대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인정하며 “뇌물에 해당한다”고 한 만큼 선고를 앞둔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대형로펌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측은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는 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뇌물로 인정받지 않은 점을 강조하는 한편 승마지원에 관해선 강요하거나 이득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적극 주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다뤄지는 혐의가 삼성 관련 뇌물죄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도 선고 결과 전망을 어둡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이르면 내달 말께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가 이뤄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의 다른 재판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판시하고 있다.
특검은 이날 “법원과 견해가 다른 부분은 상고해 철저히 다투도록 하겠다”고 밝혀 최종전은 대법원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대법원에서는 사실관계를 다투는 대신 법리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룬다.
상고 시 전원합의체 회부가 유력해 보인다.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과 그에 따른 포괄적 뇌물공여’를 둘러싼 법리싸움이 만만치 않고 재벌 총수가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선고 후 삼성 측 변호인단을 이끈 이인재 변호사는 “승마 지원 등 일부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은 대법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로 풀려났기 때문에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는 시기는 예측이 어렵게 됐다. 불구속 피고인은 상고심 구속시한(상고장 접수일로부터 최대 6개월)에 구애받지 않아서다.
대법관 교체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올 8월과 11월 고영한 대법관 등 네 명의 대법관이 교체될 예정이다. 상고심 선고가 늦어지면 전합 재판부 구성이 바뀌는 것은 물론 새 대법관들이 방대한 사건 기록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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