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 논란
국민연금 의결권, 민간 전문위원회로 이관 추진
또 다른 권력기관화 우려
이사 선임·배당·합병 등
경영 전반에 영향력 막강
민간위원 대부분이 교수
"기업 경영은 전문적 영역
법학·정치학 전공 학자들이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 아냐"
[ 유창재 기자 ]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민간인으로 이뤄진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의결권 전문위)’로 넘긴다는 보건복지부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본지 1월26일자 A1, 24면 참조
국내 주요 기업의 핵심 안건을 주로 교수들로 구성된 9명의 민간 위원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건 의결권 행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 선임, 배당, 합병 등 기업 경영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룡위원회’가 탄생해 또 다른 권력기관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연금 사회주의로 가는 지름길”
복지부는 다음달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의결권 전문위가 부의를 요구할 경우 의결권 행사 결정을 전문위에 넘겨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지침 개정안’을 심의, 의결할 계획이다. 현행 지침은 ‘기금운용본부가 찬성 또는 반대하기 곤란한 안건은 의결권 전문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의결권 전문위의 일부 위원은 2015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어트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에 문제를 제기한 직후부터 줄곧 위원회의 ‘부의 요구권’을 주장해왔다. 기금운용본부가 청와대 등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결권 전문위라고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의결권 전문위는 정부 추천 2명, 근로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 추천 각 2명, 지역가입자 추천 2명, 연구기관 추천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저마다 기업 경영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라며 “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는 ‘연금 사회주의’로 가는 지름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판단할 영역 아니다”
재계와 투자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기업 간 합병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경영 사안을 교수들이 ‘다수결’로 결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합병이 주주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건 두 회사의 현재 기업가치와 합병 후 가치를 비교하는 작업”이라며 “재무 지식뿐 아니라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한데, 아무리 훌륭한 재무학 교수라도 모든 산업에 대해 식견을 갖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학이나 정치학, 사회과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각자의 철학과 소신에 따라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는 더 더욱 아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각 기업 이사회가 합병 등이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증권사, 회계법인 등 독립적인 자문사를 고용해 기업 가치에 대한 ‘적정성 보고서(fairness opinion)’를 작성하도록 한다. 자문사들은 나중에 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업종별 전문가를 대거 투입해 철저히 기업가치를 산정한 뒤 보고서를 제출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연기금 투자운용 부서에서는 자문사들이 작성한 적정성 보고서와 외부 의결권 자문회사들이 제시하는 의견을 거의 그대로 따라 찬반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운용사에 의결권 맡기는 방안도
전문가들은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를 위탁운용사에 모두 맡기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의 절반가량을 위탁운용사에 맡기고 있지만, 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이 아닌 투자 일임 방식이기 때문에 의결권은 국민연금이 직접 행사한다.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결국 의결권 행사도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게 목적인 만큼 철저하게 경제적인 판단을 하는 운용사에 맡기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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