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사회주의' 심화 우려
'책임 없고 권한 막강' 의결권전문위… 기업 경영권 침해 우려
정부·노동계 등 추천하는
교수·연구원 등 9명으로 구성
미·일 등 해외 주요 연기금
의결권 행사 외부에 안 맡겨
[ 유창재 기자 ] ▶마켓인사이트 1월25일 오후 11시15분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민간인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이하 의결권전문위)로 넘어갈 전망이다.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오히려 투자에 정치적·사회적 판단이 개입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다음달 2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지침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계획이다.
복지부가 기금운용위원들에게 사전 배포한 개정안에는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전문위가 의결권 행사 안건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결권전문위 위원들이 요구하면 투자 업무를 총괄하는 기금운용본부는 이사 선임이나 합병 등 주요 안건에 대한 결정을 무조건 전문위에 넘겨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 의결권 행사 지침은 기금운용본부 산하 투자위원회가 판단하기 곤란할 때만 의결권전문위에 “부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것이 청와대와 복지부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청와대 지시를 받아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에게 합병 찬반 안건을 의결권전문위에 넘기지 말고 자체 투자위를 열어 찬성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결권 행사 결정을 민간인으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에 넘길 경우 오히려 전문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합병의 경우 합병가액은 양사의 현 기업 가치와 합병 시너지 등에 기초해 산정하는데 이는 고도로 훈련된 투자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합병에 대한 찬반은 결국 기업가치산정(밸류에이션)이 시작이자 끝”이라며 “여기에 사회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전문성과 독립성이 동시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결권전문위가 재계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슈퍼 위원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해외 주요 연기금 중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외부에 맡기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은 주식운용실 소속 기업지배구조팀에서 결정한다. 캐나다연금은 독립 운용조직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내부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판단한다.
네덜란드 연기금, 노르웨이 연기금 등도 모두 내부 투자운용부서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일부 부작용이 드러났다고 해서 고도의 투자 판단을 나중에 책임도 지지 않는 민간인들에게 맡기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이번 기회에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의결권전문위가 기금운용본부에 비해 정치적으로 더 독립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의결권전문위는 정부 추천 2명, 근로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 추천 각 2명, 지역가입자 추천 2명, 연구기관 추천 1명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이번 의결권 행사 지침 개정안에는 사이외사를 선임할 때 경쟁사에서 직전 5년 동안 상근 임직원으로 근무한 사람은 반대해야 한다는 지침도 포함됐다. 이 같은 지침은 사외이사로 선임할 수 있는 인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업계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을 활용할 수 없게 돼 국가적인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에선 경쟁 회사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인물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해관계만 충돌하지 않는다면 경쟁사에서 경험을 쌓은 인력의 노하우와 통찰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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