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식탁
[ 양병훈 기자 ] “음식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도외시되고 있다.”
소설 《양철북》을 쓴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말이다. 사람들은 정치·경제를 논하는 일은 수준 높게 생각하는 반면 음식에 대한 관심은 취미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문갑순 인제대 바이오식품과학부 교수는 《사피엔스의 식탁》에서 “인류가 식품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야말로 인류의 진화를 이끌고 문명을 발전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며 이런 인식을 반박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바꾼 아홉 종류의 식품이 있었다”며 이들에 대한 얘기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이 아홉 가지는 밀 쌀 옥수수 등 3대 작물, 감자, 콩, 소금, 생선, 향신료, 설탕, 차 커피 초콜릿 등 기호식품, 바나나 등이다. 예컨대 콩은 인류가 곡물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선택한 뒤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훌륭한 식품 자원이 됐다. 저자는 “농경생활을 시작한 모든 문명의 발상지에서 곡류와 콩류의 매치 전략을 실행했다”며 “콩을 파트너 작물로 정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생존 가능성은 반으로 줄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 식량 전략 얘기도 있다. 저자는 “현 인류가 누리고 있는 풍족한 식량 환경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며 “식량 생산 방식의 혁명은 우리 삶의 근간인 지구에 엄청난 부담을 가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야생 종자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세계 각국의 정부와 연구기관, 유전자은행 등에서 보내온 88만여 종의 종자가 보관돼 있는 스발바로국제조사저장고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21세기북스, 364쪽, 1만7000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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