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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문화살롱] 그때 '폭풍의 언덕'에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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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영국 요크셔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하워스. 이곳에는 늘 휑한 바람이 불어온다. 에밀리 브론테가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잉글랜드 전역을 뒤져 봐도 세상의 시끌벅적함으로부터 이보다 더 동떨어진 곳을 찾아낼 수 있을까’라며 ‘인간혐오증 환자에게는 더없는 천국’이라고 묘사한 산골이다.

이곳에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이라는 이름의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가 있다. 소설 속 언쇼 가(家)의 집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집에서는 이름 그대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집착하고 사랑을 갈망하며 격정적인 애증의 심리극을 펼친 무대다.

외딴집서 펼쳐진 애증의 서사극

바람 부는 언덕 위의 외딴집에서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신분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배신의 상처를 안고 종적을 감춘 히스클리프는 3년 뒤 부유한 신사가 돼 돌아온다. 그의 마음은 캐서린에 대한 사랑과 자신을 학대한 이들을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고뇌하던 캐서린은 자신의 마음을 히스클리프에게 고백하고 딸을 낳다가 숨을 거둔다. 캐서린의 영혼을 찾아 밤낮없이 헤매던 히스클리프는 이곳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는다.

이렇게 격렬한 사랑과 증오의 이야기가 탄생한 이곳은 에밀리 가족의 집이기도 하다. 에밀리를 비롯한 자매들은 성공회 교구 목사인 아버지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았다. 훗날 ‘브론테가의 세 자매’로 불린 이들은 여기에서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언니는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 동생은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앤 브론테다.

언니의 《제인 에어》는 금방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당대 소설과 전혀 다른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외면당했다. 잔혹한 폭력과 기이한 애정, 처절한 복수극을 다뤘으니 당시로서는 평단의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버지니아 울프와 조르주 바타이유, 서머싯 몸의 호평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지금은 ‘영국 문학 걸작 10선’에 든다.

브론테家 세 자매 명작의 산실

에밀리는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 욕망과 악마 같은 잔인함이 깃든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이들이 살았던 시기는 영국의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빅토리아 시대(1837∼1901)였다. 여왕의 강력한 통치 아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자유당과 보수당의 의회정치가 싹튼 시절, 산업혁명이 진전된 시기, 군주제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혼재된 시대였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이들 자매는 인간의 삶과 죽음, 고독과 빈곤의 근본을 파헤치며 ‘거대한 무질서’로 파편화된 세상을 한 권의 책에 결합시켰다.

이들에게 책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글은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문턱이었다. 이런 시골에서 위대한 작품이 쏟아져 나온 것은 번잡한 도시로부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밀리는 작품 속에서 ‘워더링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 높은 곳이 감당해야 하는 대기의 격동을 가리키는 이 고장 표현’이라고 묘사했다. 격동의 세기를 말 없이 견디는 언덕 위의 집이 그 속에 오버랩된다.

올해 에밀리 브론테 탄생 200주년을 맞아 《브론테 자매 평전》 등 관련 서적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과 인접 장르의 콘텐츠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언덕 위의 외딴집을 찾는 순례객의 발길도 그 어느 때보다 바빠질 전망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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