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란 기자 ]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세계 곳곳에서 불붙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당시 경제민주화 논쟁 때와 다른 것은 이번엔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열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올해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을 11.60달러에서 14달러로 대폭 올렸다. 퀘벡, 앨버타,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도 연내 최저임금을 인상한다. 과도한 부담에 애가 타는 중소상인들은 갖가지 비용절감 방안을 고안해 대응하고 있다. 팀호손 식당체인은 휴식시간을 급여에서 제외하고, 직원들의 보험료 자가부담률을 높이기로 했다.
미국은 올해 초 18개 주·19개 대도시에서 최저임금을 올렸다. 연방정부 최저임금은 2009년 이후 7.25달러에 머물고 있지만 개별 주·시정부는 11~15달러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올렸다. 짓눌렸던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만큼 논란이 더욱 뜨거울 전망이다.
최저임금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의 강제중재법에서 시작됐다. 아동노동에 대한 임금 착취를 막기 위한 차원이었다. 정치인들은 줄곧 최저임금을 올려왔으며 그 과정에서 경제학계에선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찬성론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가계소비 증가, 빈곤층 감소, 기업의 실적 반등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론자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제 아래 임금 인상이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양쪽 진영의 공방은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미국에서 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였다는 증거는 많지 않으며,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이 빈곤 해결에 특별히 효과적인 수단도 아니라는 게 앨런 매닝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의 진단이다.
똑같은 상황을 놓고도 다른 이론을 쓰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지난해 시애틀이 최저임금을 13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한 것을 놓고 벌어진 ‘전초전’에선 제이컵 비그도르 워싱턴대 교수가 모든 산업군에서 근로시간이 9.4%, 일자리가 6.8% 축소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UC버클리의 마이클 리치 교수팀은 외식업계 근로자의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소득이 1% 늘고, 고용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반대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근로시간과 소득에 초점을 둔 연구와 요식업계 취업자 수에 집중한 연구의 결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제프리 도프먼 조지아대 교수).
2016년 이후 최저임금을 9.80달러 수준으로 올린 영국과 2015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독일은 일자리 감소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프랑스는 임금 인상과 실업률 증가가 동시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임금 인상의 결과라기보다는 경직된 노동법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연구 결과가 나오면 적절한 추론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2016년까지 최저임금을 10.10달러로 올리면 90만 명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반면 5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발표한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보고서는 10대 노동시장을 가지고 추산했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이제 최저임금 논란을 둘러싼 질문을 바꿔야 한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가 아니라 ‘최저임금의 적정 수준은 얼마인가’로 말이다. 정치권의 최저임금 인상안이 저임금 근로자의 혜택과 비용을 계산해 정교하게 마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의 흐름은 최저임금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생활임금’으로 간주하는 정치권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싱글맘의 생계를 고려해 최저임금을 20달러로 인상한다면 실업률이 증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가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빈곤 탈출 목표를 달성하기엔 ‘무딘 칼’이다. 오히려 가계 소득은 근로시간, 성인 가구원과 피부양자 수 등에 달렸다. 좌파 진영에선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평균 근로자의 소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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