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화 '1급기밀'
[ 유재혁 기자 ]
고(故) 홍기선 감독의 유작인 ‘1급기밀’(24일 개봉)은 한국영화 최초로 방위산업 비리를 다룬 문제작이다. 방위산업 비리는 단순히 관련자들의 금전적인 도둑질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군인들의 생명, 나아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방산비리는 폐쇄적인 군대조직에서 내부자의 폭로 없이는 밝혀내기 힘들다. 영화는 내부고발자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 만큼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일깨운다.
야전군 출신의 강직한 육군 중령 박대익(김상경 분)이 출세 코스인 국방부 항공부품구매과장으로 부임한다. 납품업무를 처리하던 박 중령은 외국 항공기 부품업체 에어스타가 특혜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국내 업체 제품은 성능검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공군 대위 강영우(정일우)가 찾아와 “파일럿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며 제대로 검사해 달라고 요구한 뒤 비행 중 부품결함 사고로 죽는다. 군수본부 책임자인 천 장군(최무성)과 그의 오른팔 남 대령(최귀화)은 각종 기록까지 조작해가며 비행 사고를 강 대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간다. 갈등하던 박 중령은 마침내 비리 전모를 기자(김옥빈)에게 폭로하는데….
영화는 박 중령이 군내 비리에 관한 진상을 추적하고 세상에 알리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1997년 국방부 조달본부 군무원의 전투기 부품 납품비리 폭로, 2002년 공군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 2009년 해군 납품비리 폭로 등 그동안 외부로 드러난 군내 비리 사건들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영화가 실감나는 이유는 인간과 군대, 사회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낸 데 있다. 박 중령은 개인적 욕망과 군인정신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상명하복 원칙을 따르고, 관행대로 일처리를 한다면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다. 부인 명의의 통장에는 매달 일정한 돈이 들어온다. 상관의 지시니까 갈등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의 내면 한편에는 정의를 실천하고 국가와 국민에 충성한다는 진정한 군인정신과 애국심이 존재한다. 극 중 군대조직에는 비위 군인들이 있는가 하면 정의로운 군인들도 있다. 군납비리를 보도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의 세계에도 상반된 부류가 공존한다. 영화는 흔한 유머나 화려한 촬영도 없이 묵묵히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에만 집중한다. 덕분에 관객들도 정의와 진실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받는다.
홍기선 감독은 ‘1급기밀’ 촬영을 마치고 엿새 뒤인 2016년 12월15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후반 작업은 이은 감독이 맡았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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