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두번째 위기관리 이야기입니다. 지난번 자신의 치욕을 새겨놓은 BBC에 이은. 이번에는 처음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위기의 징후에 대한.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는 징후는 다양합니다. 오늘은 그 중 사람이 떠나는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2000년대 후반 일입니다. 한 대기업 홍보하는 고참 직원을 만났습니다.
당시 그가 다니던 그룹에 대한 루머가 시장에 돌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재무적 어려움에 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물었습니다. “회사 안좋다는데 어때?”
그 친구는 답했습니다. “재무제표 한번 보세요. 현금을 엄청나게 갖고 있어요” 그 정도 현금이면 몇년은 걱정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자의 촉이 있습니다. 헤어지고 돌아보니 이상하게 그 친구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습니다. 재무제표를 들여다 봤습니다. 현금은 말그대로 3조원 정도로 재무제표에는 나와 있더군요.
그런데 함정이 있었습니다. 그 현금은 대부분 표에만 나와 있는 현금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나가야 할 부채 성격이었지요. 한달 후 그 친구가 회사를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후 얼마 안돼 또다른 유능한 홍보맨들이 줄줄이 다른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회사는 그리고 일년이 안돼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중소기업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집에 하나씩은 다 있다는 제품을 만들었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 창업자는 한때 스타급이었습니다. 방송에도 자주 나왔습니다.
짐 콜린스였던가 확실치 않지만 어디서 들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타임지 표지에 CEO 얼굴이 나오면 이후 5년내 대부분의 회사는 실적이 추락하더라."
2015년 초 였던 것 같습니다. 은행쪽 후배에게 수소문을 해보니 그 회사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전해왔습니다. 그래서 당사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약속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추운 날이었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었습니다. 1970년대 볼수 있었던 커다란 나무 칸막이가 사무실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칸막이를 돌아가니 직원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앉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홍보하는 친구가 구석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나무 칸막이는 왜 저기가 세워놨냐고 물었더니 “바람 들어오지 말라고”라고 답했습니다.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장은 30분 늦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몇마디 하더니 바쁘다고 자리를 떴습니다.
홍보담당자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하는 짧은 시간 느낀 것이었지만 홍보 담당자는 회사에 대해 굉장히 시니컬했습니다.
기분 좋지 않은 취재였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그 홍보담당자가 회사를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1년반쯤이 지난 후 그 회사는 부도직전에 몰렸고, 은행관리에 들어갔습니다.
홍보실은 대부분 사장 직속입니다.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외부의 여론에도 민감한 게 홍보맨들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이라는 얘기도 합니다. 그들이 회사를 떠날때, 또는 엄청난 로열티를 갖고 있던 홍보맨들이 갑자기 회사에 대해 회의적인 얘기를 할때 기자는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기자 생활 20년간 그 느낌이 틀린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람이 떠나는 것만큼 확실한 위기의 징후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단순히 홍보맨만의 얘기는 아니지만.
위기관리에 대한 세번째 얘기는 다음주에. (끝) /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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