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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6개국 부모 만났다, 자식 때문에 안 울어본 부모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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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2부작 다큐 '미래人교육' 기획한 정현숙 CP
"외국사례 가르치기보단 공감·위안 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했다. 그 나이에 뭘 안다고. 아빠는 기가 찼다. ‘아니, 얘는 왜 이렇게 유별난 거야?’ 화가 치솟아 달려간 아빠 앞에서 아이의 방문은 굳게 걸어 잠겼다. 아이는 꽉 짜인 학교가 답답했다. 예술과 창작이 탈출구였다.

그후 부자는 잠시 떨어져 지냈다. 화해를 위한 거리 두기였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동안 아빠는 종교와 카운슬링(상담)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우리 애가 좀 다르지만 즐겁게 살아갈 수 있구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건, 결국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지난달 전파를 탄 6개국 국제공동제작 다큐멘터리 ‘미래인(人)교육’에 등장하는 베트남 가족 이야기다. 다큐는 ‘가정교육’을 집중 조명했다. 진부할지 몰라도 가정교육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베트남 독일 싱가포르 인도 몽골의 가족을 두루 만났다.

다큐는 방영 후 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들어요” 하소연부터 “이대로 괜찮은 건가? 뭘 더 해야 하는 건가?” 따위 고민, “아이가 원하는 거 후회 없이 해보라고 하고 싶은 거 있죠”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아이 생각을 묻지 않고 아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부모인 나, 실패의 길임을 알았다”는 시청 후기는 ‘부모가 처음인 이’들의 고해성사 같았다.

부모도 처음이니까. ‘미래인교육’을 기획한 정현숙 EBS 책임프로듀서(CP·사진)는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6개국 방송국이 함께 만드는 대형 스케일에 힘을 빡 줄 법도 했건만 그러지 않았다. “외국 부모는 우리와 달라요, 한 수 배우세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긴 싫었다”고 했다.

“프로그램 만들면서 걱정한 게 그거예요. 한국은 못하잖아, 독일은 잘하겠지. 우리 스스로 선입견을 갖고 있잖아요. 근데 아니거든요. 프로그램 보면 아시겠지만 쉬운 집 없어요. 다들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자식 때문에 안 울어본 부모 없다는 거죠.”

2부작의 각 제목 ‘좋은 부모 나쁜 부모’와 ‘꽃길 흙길’은 직설적이다. 누군들 좋은 부모 되고 싶지 않겠나. 자녀가 꽃길만 걷게 해주고픈 마음도 인지상정일 터이다. 그러면 꽃길 닦아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인가? 역으로 흙길 걷게 하는 부모는 나쁜 부모인가?

정 CP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법론의 문제’라는 얘기다. 부모의 설계가 자녀 스스로 실패해보며 성장하는 경험을 뺏는다면, 앞으로 평균 30번 직업을 바꾸며 살아갈 아이들에게 진정 꽃길일까. 또 부모 세대의 인생 성공법칙 전파는 인공지능 시대에 얼마나 유효적절한 상속일까.

다큐에는 퇴근 후 매일 밤 9시 화이트보드 앞에 서는 한국 아빠도 나온다. 치과의사 아빠는 수년간 저녁 약속도 마다하고 초등학생, 중학생 아들 둘을 가르쳐왔다. 아이들이 우등생이 되어 자신처럼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노력이 놀라운 동시에 안타까웠다.

“아빠가 아이들 진도에 맞춰 다시 공부해가며 밤마다 가르쳐요. 정말 엄청난 노력인 거죠. 그런데 왜 슬플까요? 아빠가 그렇게 하는 건 두렵기 때문이에요. 오로지 하나, 귀한 내 아들이 뒤처지면 안 되니까. 이왕이면 나처럼 의사가 되길 바라니까.”


한 갈래 길만 있는 게 아님을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정 CP는 귀띔했다. 화면에 등장하는 다른 나라 부모도 모범 사례로만 보이진 않았다. 독일 엄마는 솔직했다. “아이들 자율성을 존중하려 하지만 내 몸이 힘들면 잘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엄마 사랑하지? 사랑하면 말을 들어야지. 왜 엄마 말 안 들어?” 그러면서 싱가포르 엄마는 회초리까지 들었다.

“모두 보면서 ‘저들도 비슷하네’, ‘자식 위하는 부모 마음은 같은데 방법이 다른 거구나’ 생각했을 거예요. 훈수 두거나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공감과 위안을 주고 싶었죠. 힘을 빼고 만든 건 그래서였습니다. 웃고 희망을 볼 수 있는 프로를 원했지, 자책하고 비난하는 프로는 원하지 않았거든요.”

아이의 실패 기회를 제공할 것. 부모가 아이의 실패를 대행해 성장통을 건너뛰지 않을 것. 아이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강해지게끔 할 것. 무조건 아이를 컨트롤(통제)하려 하지 말고 때로는 가만히 지켜볼 것.

관찰한 6개국 7곳 가정 사례에 비춰 이처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정교육이 길러주자는 게 정 CP의 제안이다.

“공자 시대에도 아이에 맞춰 가르쳤는데 지금은 하나의 정답을 전부 따라가는 ‘몰빵형 교육’을 한다”고 짚은 그는 “부모와 아이가 손잡고 눈 맞춰 저마다의 답을 찾아가자”고 당부했다. “평생 답을 못 찾아도 행복할 수 있다. 동지애가 생기니까”라며 웃어보인 게 인상적이었다.

아이 낳아 기르기 두려운 소위 ‘헬조선’에선 뜬구름 잡는 얘기 아니냐고 물었더니 “거대 담론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내 불안이 줄고 나부터 웃는 얼굴로 대해야 아이들도 달라진다”며 “각국 가족을 들여다보면서 그 시작이 가정교육이란 믿음은 더 커졌다”고 귀띔했다.

정 CP는 1987년 EBS에 입사한 어린이 미디어 전문가다. “아이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냥 말려드는 것 같았다”고. 웃는 아이 얼굴을 보면 마냥 좋았다. 그 얼굴을 보려고 뭔가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니, 말 그대로 천성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지원을 받아 제작한 이번 다큐는 국내뿐 아니라 5개국 언어로도 각각 번역해 현지에 방영된다.

국내 방송의 현지 로케 방식보다 몇 배 힘들었지만 그는 국제공동제작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수고를 뛰어넘는 성과 덕분이다. “나라마다 왜 다른지, 어떤 장벽이 있는지, 그럼에도 관통하는 핵심은 무엇인지, 그 자체가 우리 시야를 트이게 하는 커다란 문화 교류니까요.”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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