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정부 형태 다툼밖에 없는 개헌 논의
자유주의·시장경제의 무엇을 담느냐가 핵심
길게 보고 국민이 납득하는 개헌 진행해야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시기를 두고 다투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6월 시행하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하기 위해 2월까지 개헌안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한국당은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면 지방선거의 정권심판 이슈가 묻히고 또 개헌안이 국회에서 합의되지 않았으니 좀 더 논의해 내년 12월께 국민투표를 하자고 주장한다.
개헌의 핵심 논리는 ‘촛불의 메시지’에서 나온다. 촛불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 내부에서 비판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꾸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논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문에 광주항쟁과 촛불을 넣자’ ‘기본권 주체를 ‘모든 국민’에서 외국인을 포함하는 ‘모든 사람’으로 바꾸자’, ‘기본권에 안전권·건강권·성평등을 추가하자’ 등 백화점식 주장만 가득하지 핵심인 대통령 권력 분산과 견제 논의는 미흡하다.
우리는 1948년 제헌 이후 지금까지 아홉 번 개헌했다. 제4차 개헌을 빼고는 모두 권력구조 변경과 관계된 개헌이었다. 가장 최근인 1987년 제9차 개헌 역시 대통령 직선제 선출을 회복하고 장기 집권을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 실시와 장기 집권 저지에는 동의했지만 ‘5년 단임안’은 개헌을 주도한 김영삼·김대중 세력이 각각의 집권 보장을 위해 슬그머니 넣었다. 이렇게 개헌의 역사는 권력구조 변경이 국민의 충분한 이해와 동의에 기초해야 하며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최근 개헌특위 정부형태 자문위원회는 ‘혼합정부제’를 다수 의견으로, ‘내각제’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소수 의견으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또 이 혼합정부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명명하고 대통령 권한 분산 및 축소를 가져올 수 있어 적절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원집정부제라는 기존에 쓰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혼합정부제라는 용어를 사용해 혼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원집정부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반기문 대망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내세운 위인설관(爲人設官)의 정략적 제안이었다.
자문위원회의 다수 의견인 혼합정부제 도입과 관련한 핵심은 총리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느냐 아니면 국회가 총리 임명권을 갖느냐다. 국회가 총리를 임명하면 ‘내각제 방식의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이 임명하면 ‘대통령제 방식의 이원집정부제’가 될 것이다. 결국 국회가 권력을 가지느냐, 대통령이 권력을 가지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국회가 권력을 가져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과 국회에서 뽑힌 총리 간에 권력 투쟁이 발생한다면 자칫 국가를 둘로 나눠 다툴 정도의 국가적 갈등이 재연될 것이다. 우리는 제2공화국 내각제 정부 형태에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 간 내각 요직 임명을 둘러싼 신파·구파의 권력 갈등이 정국을 혼란으로 몰고간 경험을 한 바 있다. 따라서 혼합정부제가 채택되면 국민 직선으로 당선된 대통령과 국회에서 임명한 총리 간 집행권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 또 혼합정부제는 국민과 정치권 모두에 생소한 제도다. 시행착오를 거쳐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수십 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 역시 부작용은 작지 않다. 5년 내에 이루지 못한 정책을 8년이 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허망하다. 미국처럼 대통령 재임을 노린 선심성 포퓰리즘 지출이 급증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모름지기 제도란 진화의 산물로 역사 속에서 그 나름의 합리성과 완결성을 갖는다. 영국의 내각제는 1688년 명예혁명 이후 300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고 미국의 대통령제는 1781년 헌법제정회의 이후 지금까지 진화해오고 있다. 반면 우리 헌법 속의 권력구조는 70년도 안 돼 9차례나 개정되며 바뀌어왔다. 이번이 열 번째 개헌이다. 서둘러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헌은 시기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무엇을 기본으로 담느냐가 핵심이다.
여야 정치권은 개헌의 내용을 먼저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국민이 납득하고 동의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국민이 빠져 개악(改惡)된 과거 개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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