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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경찰에 개인정보 제공, 포털 책임 무"… 정보요청 남용은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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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통신자료 제공과 손해배상 (대법원 2016년 3월10일 선고 2012다105482 판결)

이대희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요즘은 인터넷에서의 행위 등을 통해 무수한 개인정보가 생성되고 있다. 따라서 헌법상의 기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국가가 범죄수사 등 공익목적을 위해 일정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법상 국가기관이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제도로 ‘통신제한조치’,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통신자료 제공’ 등을 꼽을 수 있다. 수사기관 등이 우편물을 검열하고 전기통신을 감청하는 통신제한조치를 취하거나 가입자의 전기통신일시, 전기통신 개시·종료시간, 발·착신 통신번호 등 상대방의 가입자번호, IP 주소, 인터넷의 로그기록자료 등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통신비밀보호법).

그런데 전기통신사업법은 이용자의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아이디·가입 및 해지 일자 등 ‘통신자료’에 대해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자에 ‘자료제공요청서’에 의해 그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전기통신사업자는 이런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용자의 신원정보나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통신자료의 제공 요청에 응해야 하는지는 사업자의 재량에 속한다.

그럼 전기통신사업자인 인터넷 포털 업체가 수사기관의 요청에 응해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제공한 경우 포털 업체는 이용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나. ‘대법원 2016년 3월10일 선고 2012다105482 판결’은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원고 “경찰 요청에 자동제공은 문제”

이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자. 원고는 피고인 인터넷 포털업체 네이버의 이용약관에 동의하고 피고가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는 자다. 원고는 2010년 3월4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 수상자인 김연아 선수를 환영하면서 두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자 김연아 선수가 이를 피하는 것 같은 장면을 편집한 사진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이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인터넷 카페의 유머게시판에 올렸다. 문체부 장관은 이 게시물을 올린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경찰은 네이버에 원고에 대한 인적사항 제공을 요청했다. 이틀 후 피고는 원고의 네이버ID, 이름, 주민번호, 이메일, 휴대폰 번호, 네이버 가입일자 등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경찰에 제공했다.

이에 대해 원고는 피고의 의무 위반을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기관의 자료제공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고, 피고의 이용약관은 피고가 회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 근거한 것이었다. 원고의 주장 근거는 피고가 통신비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기구의 심사를 통해 사안에 따라 회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제한적인 범위에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원고의 주장은 피고가 수사기관 요청에 응해 개인정보를 자동으로 제공할 것이 아니라 원고 자신에 대한 ‘범죄사실 등’을 실질적으로 심사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심사해 범죄가 성립되지 않거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회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그 범위를 제한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수사기관이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한 경우 포털이 통신자료제공 요청 사유를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다.

1심(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에게 실질적 심사의무가 있지 않으며, 피고의 원고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의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서울고등법원)은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한 조사·수집·보관·처리·이용 등의 행위는 모두 원칙적으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에 해당하고, 피고의 행위로 인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익명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따라 포털에 실질적 심사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피고가 수사기관에 원고의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 일체를 제공한 행위는 원고의 개인정보를 충실히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배해 원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익명표현의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2심은 피고가 원고에게 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판결한 것이다.

“신속 수사, 범죄 예방 도와야”

그러나 대법원은 포털의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하지 않고 항소심의 판단을 뒤집어 1심과 마찬가지로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했다. 피고 포털이 경찰의 요청에 따라 원고의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은 전기통신사업법상 적법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기통신사업법 규정 자체가 전기통신사업자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심사하도록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기관 등이 수사 등을 위해 요청 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자료제공요청서로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는 이에 따를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전기통신사업자가 개별 사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 그 제공 여부 등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도록 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전기통신사업자에 실질적 심사를 요구하는 것은 통신자료에 대해 그 제공방법과 절차를 정한 입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속한 수사와 다른 범죄 예방 등을 위해 해당 개인정보의 내용과 성격 등에 따른 통신자료는 법원의 허가나 법관의 영장 없이 일정한 사항을 기재한 수사기관의 자료제공요청서라는 서면 요청에 의해 제공함으로써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기통신사업법의 입법 취지라는 것이다.

‘실질적 심사의무’는 수사기관 몫

수사기관에 대한 이용자의 통신자료 제공에 관한 대법원의 판시 결과는 언뜻 이용자의 권리를 축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이용자의 사생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범죄사실 등에 대한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하면 전기통신사업자가 그 제공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이는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포털과 같은 사인(私人)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부당한 것이 된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권한을 남용한 결과로 통신자료가 제공돼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관한 기본권 등이 침해됐다면 그 책임은 이를 제공한 전기통신사업자가 아니라 이를 요청해 받은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에 직접 추궁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실적으로 수사기관에 통신자료가 제공됨으로써 해당 이용자가 입게 되는 기본권 침해 등의 피해법익과 통신자료 제공으로 달성하려는 보호법익 사이의 이익형량이나 사안의 중대성 및 긴급성 등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를 사법기관도 아닌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해 이런 심사가 행해질 경우 그 과정에서 혐의사실의 누설이나 그밖에 별도의 사생활 침해 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 헌법상 기본권도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제한 가능

대법원이 ‘포털 업체의 실질적 심사의무’를 부인한 것은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과 그 제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익명 표현의 자유도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이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수사를 위해 통신자료의 제공을 요청하고 전기통신사업자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자료제공 요청의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심사해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한 경우에는 해당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익명표현의 자유 등을 위법하게 침해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수사기관이 통신자료의 제공 요청 권한을 남용해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있겠다.

이대희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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