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신세계에선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굶주림과 실업, 가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도, 전쟁도 없고 누구도 고독하거나 절망을 느끼지 않으며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아아, 얼마나 신기한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
올더스 헉슬리(1894~1963)의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과 함께 세계 3대 ‘디스토피아(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대화돼 나타나는 어두운 미래)’ 소설로 꼽힌다. 1932년에 출판된 《멋진 신세계》는 역설적 표현이다. 과학의 진보가 전체주의, 인간의 오만함과 밀착할 때 어떤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뒤 파시즘 등장을 지켜본 유럽인의 절망감과 불안감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국가 권력이 시민들의 정신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극도로 발전한 과학기술 문명을 통제하는 계급사회를 그렸다.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가 태어난 해인 1863년을 인류의 새 기원으로 삼았다. 작품 속 배경은 포드 기원 632년(서기 2496년)의 영국이다.
인간을 대량 생산하고 감정도 조절
헉슬리가 ‘포드 기원’을 채택한 것은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서구 경제를 가장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세계에선 모든 것이 ‘포드주의’에 따라 자동 생산된다. 무스타파 몬드 총통이 전 세계를 정복해 단일 독재국가로 만들었다. ‘공유, 안정’이 이곳의 표어다. 인간을 대량 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품질을 조절해 사회구성원을 독재자의 의도대로 만들어낸다. 구성원들은 이를 문명사회, 신세계로 받아들인다.
신세계에서 인간은 ‘보카노프스키 과정’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다.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병 안에서 하나의 난자를 72개로 분열시켜 인간을 대량 생산한다. 사회적 지위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 5개 계급에 따라 선천적으로 능력을 결정하고, 영양분을 적절히 조절해준다.
노동계급의 태아가 들어 있는 병에는 태아를 표준 이하로 만들기 위해 산소를 적게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머리가 좋고 키가 큰 ‘알파계급’에서부터 원숭이만 한 체구의 백치 ‘엡실론’에 이르기까지 지능과 체격 모두 계급에 따라 정해진다. 신세계에선 가족이란 단위가 없다. 자연출산은 혐오스럽기 짝이 없으며 아버지, 어머니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헉슬리는 이런 아이디어를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에서 얻었다.
아이들은 계급에 맞게 행동하도록 교육받는다. “알파계급의 아이들은 우리보다 공부도 열심히 해. 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니 알파계급이 되기 싫어.” 하층 계급 아이들은 잠을 잘 때 베개 밑에서 올라오는 이런 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계급의식을 뚜렷이 갖는다.
심리적 안정과 행복 문제까지도 정부가 관리한다. 정열과 불안정이 문명의 최후를 의미한다고 여기는 신세계 문명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아드레날린으로 몸을 씻어낸 뒤 흥분대처 요법을 받는다. 고민이나 불안은 환각성 도취제 ‘소마’를 먹어 해결한다.
이 때문에 사회는 안정돼 있다. 갈등도 없다. 가정을 꾸려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종교와 문학은 감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사회에 해가 된다고 여긴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말은 금기어다. 개인의 자유는 경멸받는다.
헉슬리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사회적 안정과 개인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신세계에 대해 비극적 사회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야만인’ 존 새비지의 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새비지는 신세계 외곽에 철저하게 격리돼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신세계 사람들이 ‘원시적 방법’이라고 경멸하는 임신을 통해 새비지를 출산했다. 새비지는 수면학습법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으며 자랐고,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갖고 있다.
"개인 자유 존중 않을 땐 독재 불러"
새비지는 총통에게 “나는 안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과 문학을 원해요. 진정한 자유도 원하죠. 나는 죄도 원합니다”고 외친다. 총통이 “자네는 불행할 권리를 요구하는군”이라고 하자 새비지는 “그렇습니다”고 대답한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잃어버린 신세계에 절망한 새비지는 자살을 택한다.
헉슬리는 책 출판 뒤 언론 인터뷰에서 “인간에게는 행복과 안정보다 자유라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며 “인간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할 자유가 없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 머리글에서 “과학을 개인의 자유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민족주의적 전체주의나 초(超)국가적 독재체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 발달이 인간의 오만함과 결합하지 않도록 인류는 개인의 독창성과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관용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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