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 결론 냈어야 하는데…새해 불과 열흘 남겨놓고 확정
내년 배출권 5억3846만t
에너지 정책 기조 바뀌며 탄소 감축목표 결정 지연
2019~2020년 계획은 내년 상반기로 결론 미뤄
환경부→기재부→환경부…총괄부처 계속 갈팡질팡
배출권 가격 급등 행진…기업들 경영계획 수립 애로
[ 오형주/심은지/고재연 기자 ]
정부가 내년 산업계에 할당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총량을 예상 배출량의 85% 수준인 약 5억3846만t으로 정했다. 6개월 전 확정됐어야 하는 배출권 계획이 새해를 불과 열흘 앞두고서야 나온 것이다. 2019~2020년 할당계획은 아예 내놓지조차 못했다. “‘땜질식 배출권 정책’이 기업의 경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할당량만 덜렁 내놓은 정부
정부는 19일 국무회의에서 ‘제2차 계획기간(2018~2020년)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계획’을 의결했다. 내년 배출권 할당량 5억3846만t은 앞서 2014년 수립된 1차 계획기간(2015~2017년) 연평균 배출권 할당량과 같다. ‘탈(脫)원전·탈석탄’ 등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로 정확한 배출권 추계가 어려워지자 지난 계획에 근거해 일단 내년치 할당량만 내놓은 것이다.
기업들이 배출권 할당량을 맞추려면 예상 배출량보다 15%를 줄여야 한다. 할당량을 초과해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 구입에 따르는 추가 부담을 진다. 지난 18일 기준 배출권 t당 가격(2만2000원)을 감안하면 연간 2조616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2019~2020년도분을 포함한 2차 배출권 할당계획은 내년 상반기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법에 따르면 이 계획은 적어도 시행 6개월 전에 나와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에너지 정책의 큰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전력수급 기본계획, 에너지 기본계획, 미세먼지 종합대책, 온실가스 감축 기본로드맵 등이 확정되지 않아 할당계획을 세우기 곤란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기업에 돈을 받고 배출권을 파는 유상할당 시행도 1년 연기했다. 2019년부터 무역집약도와 생산비용발생도를 고려해 대상 업종을 정한 뒤 2018~2020년 전체 할당량의 3%를 유상할당할 방침이다.
3년간 두 번 바뀐 담당부처
정부의 배출권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한 배경엔 배출권 담당부처의 ‘잔혹사’가 있다. 배출권 업무는 2015년 도입 후 3년 새 총괄부처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엔 환경부였다. 하지만 “산업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난해 6월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로 넘어갔다.
새 정부 출범 후 배출권 컨트롤타워 기능은 다시 환경부가 맡게 됐다. 정부가 15일 내놓은 직제개편안을 보면 기재부에서 배출권 총괄 운영기능을 담당하던 인력 5명이 내년 1월1일 환경부로 옮긴다. 기재부 장기전략국에 있는 기후경제과는 폐지된다. 작년 6월 환경부에서 기재부로 간 인력이 고스란히 다시 친정으로 복귀하는 셈이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배출권 담당부처가 자주 바뀌면서 산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에 발만 동동
정부의 늑장 발표에 발전, 철강, 석유화학 업체 등은 ‘비상’이 걸렸다. 이미 지난달 확정한 내년 사업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당장 발생하는 할당량 부족분의 배출권 구매 비용을 내년 예산에 새로 반영해야 한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1차 계획기간에 배출량이 남아 이를 판매한 기업들도 2차 계획기간에는 물량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시장에 물량을 내놓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수급이 더 꼬여 기업 부담만 커질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기업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내년치 할당량만 겨우 내놓은 상황이어서 장기적인 사업계획 수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호황기를 맞아 증설 및 투자를 발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석유화학업계는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할당량을 결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 공장의 에너지 효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배출량을 더 이상 낮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리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오형주/심은지/고재연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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