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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의 '경영과 기술'] 빅데이터를 '21세기의 석유'로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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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빅데이터와 경쟁력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빅데이터산업이다.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가 미래 유망 직종 목록의 상단을 차지하고 급여 수준도 가장 높을 것이라고 한다.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의 멤버십 카드를 설계한 영국 수학자 클라이브 험블리는 이미 2006년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라는 말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말은 한국처럼 자연자원이 없는 나라에는 복음일 수 있다. 데이터가 새로운 경제적 가치의 원천이고, 데이터의 생산·가공·유통에서 경쟁력이 좌우된다면 새로운 국가경쟁력의 수단이 등장한 셈이기 때문이다.

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데이터베이스(DB) 마케팅은 물론 고객관계관리(CRM)에 의한 세분화된 마케팅도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유행어였다. 그 후에도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비즈니스 애널리틱스’로 이름만 달라졌을 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과 경영에 대한 기대는 늘 있어 왔다.

풍부해진 빅데이터, 생산비용도 저렴

그런데 빅데이터 열풍이 새롭게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석유나 다른 자연자원처럼 생산·가공·유통·소비라는 가치사슬 관점에서 데이터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빅데이터를 새롭게 조명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첫째, 생산되는 데이터가 다양해지고 생산 비용이 저렴해졌다. 과거의 데이터가 사업상 거래데이터에 국한됐다면 사물인터넷(IoT)과 스마트 기기를 통해 생산되는 데이터는 매우 다양해졌다. 스마트폰은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소셜미디어에 데이터를 올리고 있고 웨어러블 기기는 인간의 움직임 또는 생체 정보를 양산하고 있다.

수많은 벤처회사가 웹이나 스마트앱, 소셜미디어의 데이터를 분석해 선거운동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이나 개인 대 개인(P2P) 대출 플랫폼은 지역별 금융 소비자의 실시간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즉 센서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생산되는 수많은 데이터가 소셜미디어나 플랫폼상에 존재해 쉽게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이 데이터의 풍요와 데이터 생산비 절감을 가져오고 있다.

유통 및 저장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는 점 또한 데이터 풍요의 한 요인이다. 메모리 가격 하락과 클라우드 기술의 보편화는 데이터 저장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고속 인터넷망의 확산은 유통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다.

문제는 빅데이터의 가공비용과 효율이다. 데이터에서 주요 의사결정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추출해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은 없었다. 대부분 해당 영역 전문가의 직관과 창의력, 통계적 기법 등이 활용되는 소위 노동집약적 과정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 특히 ‘딥러닝’이라 불리는 기계학습 기법의 진화가 데이터로부터 지식 추출의 자동화 가능성을 크게 넓히고 있고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추고 있다. 하지만 이 가공의 단계는 여전히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인적 자원의 수준이 품질을 좌우하고 있다.

빅데이터 소비는 대부분 기업 경영과 정책 수립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즉 데이터 활용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시장 크기가 결정한다.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가 허용되지 않으면 지역별 택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적절한 변동 가격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의 수집과 변동가격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이라는 지식이 생성되지 않는다. 원격진료가 불허된 나라에서 웨어러블 기기에 의한 생체 정보가 수집되거나 그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단하는 지식이 생성될 리 없다. 로보 어드바이저가 비대면(非對面) 위임투자로 불법화된 나라에서 고객 투자성향의 데이터와 최적화된 투자 알고리즘이라는 지식이 가공될 리 없다. 지금 이런 시장 부재가 한국의 현실이다.

규제 풀고 '가공 경쟁력' 키워야

따라서 데이터가 21세기 석유가 되려면 데이터의 가치사슬에 존재하는 병목현상 등을 제거해야 한다. 데이터 수집에는 지나친 보안과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병목현상이 존재한다. 저장 및 유통에도 이 원천 봉쇄적인 규제가 금융과 의료 데이터의 클라우드 저장 및 공유를 불허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데이터 가공 인력의 부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시장의 부재다. 산업 규제가 빅데이터 시장을 막고 있는 한 한국의 빅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가 아니라 쓰레기일 뿐이다.

빅데이터산업의 경쟁력은 기술적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모든 나라가 디지털 기술 혁명의 혜택을 비슷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데이터 생산과 가공·소비를 제약하는 규제를 얼마나 빨리 혁신하고 시장을 만들 수 있는지와 데이터 가공을 통해 지식을 추출하는 인적 자원의 경쟁력에서 좌우될 것이다. 그것은 기술과 자동화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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