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의환·최승주 삼진제약 공동 창업자
41년생 동갑내기 약대생
제약회사 영업 실적 1,2위 다퉈
'더 좋은 약 팔자' 함께 창업했죠
'맞다! 게보린'으로 명성
10여건 신약개발 프로젝트 진행
표적항암제 후보물질 내년 임상
"임직원 간 신뢰가 성장 원동력"
[ 한민수 기자 ] “서울 마곡에 지어질 연구센터 신축에 최소한 500억~6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9년 중앙연구소 이전이 목표인데, 마곡으로 가면 혁신신약 연구개발 가속화로 삼진제약의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중견제약사 삼진제약 공동 창업자인 조의환 회장과 최승주 회장을 지난 4일 서울 서교동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직장동료로 만나 양보와 신뢰를 토대로 47년째 성공적인 동업자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두 창업자는 요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등 세계 제약업계의 화두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연구조직을 확대하고 신약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입사동기의 의기투합
조 회장과 최 회장은 1941년생 동갑내기다. 조 회장은 중앙대 약대, 최 회장은 충북대 약대를 졸업했다. 군 제대 후 1968년 건풍제약에 나란히 입사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임직원 50여 명의 자그마한 회사에서 조 회장은 수도권 병원, 최 회장은 지방 병원 영업을 담당했다. 당시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회사의 약을 사다 파는 유통업 수준에 머물렀다. ‘내 가족이 아플 때 내가 만든 약으로 치료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던 두 사람은 1970년 의기투합해 삼진제약을 창업했다. 나이 서른이었다.
최 회장은 “우리 둘 다 영업에서 1, 2위를 다투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의사들에게 약효가 좋은 약만을 판다는 신뢰를 줬기 때문에 창업 후에도 의사들이 우리 회사의 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직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영업 현장을 직접 챙겼다. 지방 영업을 맡았던 최 회장은 하루에 비행기를 세 번씩 타며 대구 광주 부산의 병원을 돌기도 했다.
두 사람은 회사를 차리자마자 연구소부터 꾸렸다. 약효가 좋아야 시장에서 통한다는 믿음에서였다, 조 회장은 “영업 현장에서 만난 의사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의약품을 하나씩 개발했다”고 말했다.
게보린으로 스타 제약사 발돋움
삼진제약이 본격 성장 궤도에 올라선 건 1979년 해열진통제 ‘게보린’을 출시하면서다. “한국인의 두통약, 맞다! 게보린”이라는 광고문구가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될 정도로 히트를 쳤다. 출시 6년 만인 1985년 국내 진통제 시장 1위에 오르며 국내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던 다국적 제약사 로슈의 ‘사리돈’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게보린의 마케팅 성공 사례는 롯데 등 국내 대기업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주목받았다. 게보린은 누적 생산량 35억 정을 앞두고 있다.
최 회장은 “‘맞다! 게보린’은 당시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에서 상봉 가족들이 외친 ‘맞다! 맞다!’라는 말과 맞물려 더 유명해졌다”며 “무엇보다 약효가 좋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광고를 하려면 게보린처럼 하라고 할 만큼 국내 대기업들이 벤치마킹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게보린으로 이름을 알린 삼진제약은 발 빠른 복제약 출시로 중견 제약사로 발돋움했다. 1위 매출 품목인 항혈전제 ‘플래리스’는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의 원조약 ‘플라빅스’의 국내 첫 복제약으로 2007년 1월 출시됐다. 출시 첫해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5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플래리스로 순환기 치료제 시장에서 기반을 다진 삼진제약은 2012년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 복제약인 ‘뉴스타틴-에이’, 2014년 아스트라제네카의 고지혈증 치료제 복제약 ‘뉴스타틴-알’을 잇따라 내놓고 블록버스터 품목으로 성장시켰다.
세계적 수준의 제조 기술력
조 회장은 “제약 시장을 조사해 미진한 부분을 찾고, 그중에서 좋은 것으로 연구개발을 계속하니 성장 품목이 하나씩 추가됐다”며 “핵심 원료를 직접 생산하면서 품질과 가격 등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진제약의 저력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2012년부터 5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하고 있다. 올해도 최대 실적 경신이 유력하다. 2009년 국내 최초로 플래리스의 원료인 클로피도그렐 합성에 성공하고, 2013년 충북 오송에 원료합성 전용 공장을 완공하면서 원료부터 완제 의약품까지의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췄다. 지난해 국내 제약업계 최고 수준인 1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배경이다.
최 회장은 “과거에는 성인병 시장이 크지 않았으나 수명 100세 시대가 오면서 관련 의약품이 주목받고 있다”며 “삼진제약의 제품군은 노인성 질환 치료제에 집중돼 있어 안정적인 성장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은 신약”
2020년 창업 50주년을 맞는 삼진제약은 새로운 50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신약이다. 이미 10여 건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절반가량이 혁신신약이다. 인천대 한국파스퇴르연구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압타바이오 등과 협력해 개방형 혁신의 토대도 만들어놨다.
최 회장은 “의약품에 대한 각국의 규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도 이제는 신약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으로 3, 4개월이 걸리던 동남아시아와 남미 신흥국에서의 시판 허가가 이제는 1년이 더 걸릴 정도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복제약으로는 수출 경쟁력을 갖추기가 힘들 것이란 진단이다.
삼진제약은 세계 최초로 먹는 안구건조증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임상 2상 단계다. 눈에 투여하는 기존 약들의 낮은 치료율 및 복약 편의성을 극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이성 대장암, 급성백혈병 등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 후보물질도 개발 중이다. 전임상을 마치고 내년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 회장은 “안정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부채가 거의 없는 재무구조를 갖췄고 이제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며 “그동안 연구개발(R&D)비로 매출의 7~8%를 썼지만 마곡 연구소가 가동되면 연구개발비 비중이 10%를 넘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곡에 들어설 R&D센터는 내년 착공할 계획이다. 완공 이후 연구개발 인력을 대거 확충하고 바이오 의약품과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신약 개발에도 나설 예정이다.
“임직원 간 신뢰가 핵심 경쟁력”
조 회장과 최 회장은 5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어온 핵심 원동력으로 임직원 간 신뢰를 꼽는다. 제약업계의 큰 시련이었던 2012년 약가 인하 당시 노조는 회사를 위해 연차수당을 반납했다. 경영진은 자사주를 처분해 모든 직원에게 우리사주를 무상 출연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두 사람의 경영 철학은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베풀면 돌아오게 돼 있다는 믿음으로 사내 복지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아침을 못 먹고 나온다는 직원의 얘기를 듣고 곧바로 아침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출근시간에 쫓겨 다림질을 못 했다는 직원을 위해 회사 인근 세탁소에서 와이셔츠를 다림질할 수 있게 해줬다. 구두도 닦아준다. 개념조차 생소하던 1977년 ‘주 5일제’를 시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진제약에는 구내식당이 없다. 회사 근처 식당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생 철학은 사회공헌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680여 명의 임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1% 사랑나눔 운동’이 대표적이다. 특정 제품 연매출의 1%를 적립해 기부와 현장 봉사를 임직원들이 직접 하고 있다.
최 회장은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인덕(人德)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것은 임직원 각자가 할 일을 묵묵히 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조 회장은 “우리 두 사람은 한 번도 사적인 일로 갈등을 겪거나 개인적인 상황을 회사 일에 개입시키지 않았다”며 “서로가 무언의 약속으로 오직 회사 발전에만 전력을 기울여왔다”고 47년 동업 비결을 전했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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