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28조9000억 '슈퍼 예산'
"2019년 이후도 지원"으로 더 꼬인 최저임금 해법
근로장려금 늘리면서 최저임금 인상 어려워
사회보험료 연계도 결국 '혈세로 보전' 논란
노동계 "복지 후퇴 좌시 못한다" 반발 클듯
[ 고경봉 기자 ] 여야가 내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영세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최저임금 지원에 2조9707억원을 집행하기로 합의했다. 정작 정치권의 합의를 종용하던 정부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됐다. 내년에만 한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반대하던 야당이 2019년 이후에도 계속 시행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 대신, 여당은 현금 지원을 줄이고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를 통해 간접 지원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관계 부처와 노동계는 EITC 확대를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 올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국회가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노동계 반발 등 후유증이 불가피해졌다.
◆국회, 최저임금 인상폭 줄이나
지난 4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기업의 인건비 상승분을 정부가 보조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의 내년 예산을 2조9707억원으로 합의했다. 또 2019년 이후에도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급하되, 내년 수준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성하기로 했다.
다만 여야는 예산안 통과에 따른 조건을 내걸었다. 정부는 현금 직접지원 방식의 일자리 안정자금 제도를 EITC 확대, 사회보험료 지급 연계 등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추진 계획과 진행 상황을 내년 7월 국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EITC는 저소득 근로자에게 근로장려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여야의 합의 내용은 ‘내년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자의 인건비를 보조하지만 그 이후에는 근로자에게 직접 주는 장려금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최저임금 인상폭을 정부 방침보다 낮춰야 한다는 의미”라며 “최저임금을 계속 높이는 상황에서 근로장려금까지 늘리겠다면 영세사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반면 근로자는 이중 혜택을 보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뀌는 방식대로라면 2019년부터는 EITC를 확대하는 대신 최저임금 인상폭은 줄여야 하는 만큼 정부가 공약으로 제시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사회보험료 연계도 논란 가중
여야 합의안의 또 다른 한 축인 ‘사회보험료 지급 연계’ 방안도 논란의 불씨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자리 안정자금을 통한 지원을 줄이는 대신 영세 자영업체 사업자와 근로자들이 내는 사회보험료를 깎아주겠다는 게 여야 합의다.
정부는 현재 1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의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야의 합의에 따라 정부는 이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원 제도만 바뀌었을 뿐 최저임금 인상을 결국 정부가 보전한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 보험 수혜자 부담원칙에도 어긋난다.
노동계 반발도 불가피하다. 노동계 관계자는 “일단 정부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대체하기 위해 어떤 안을 내놓는지 지켜보겠다”면서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의 기조가 흔들릴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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