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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업이 투자·혁신 나설 환경부터 조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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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외 성장동력 안보이는 경제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 2% 남짓
규제장막 걷어내야 투자확대 가능"

송원근 <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



우리 경제의 올 3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1.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라트비아 다음으로 높다. 라트비아가 신규 OECD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주식시장도 기업실적의 호조세에 힘입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성적표만 놓고 보면 우리 경제가 그동안의 부진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성적표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분기 높은 성장률은 수출 급증과 정부지출 증가에 기인한다. 세계적인 반도체 초호황과 2012년 이래 정부소비 증가율을 최고치로 만든 이례적인 추가경정예산이 높은 성장률을 떠받치고 있는 형세라고 할 수 있다. 주식시장의 고공행진도 반도체 관련 주가의 급등에 기인한다. 그러나 소위 ‘반도체 착시 현상’이라는 껍질을 벗겨 놓으면 지속성장의 동인이 보이지 않는 한국 경제의 허약한 민낯이 드러난다.

이런 민낯은 기업들의 투자가 만성적으로 정체 상태에 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투자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대기업의 투자가 지난 수년간 정체 상태에 있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2%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 투자가 꾸준히 증가해야 한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도 기업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하는 이유를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나 책임의식에서 찾을 수는 없다. 기업들은 투자 유인이 있을 때에 투자를 한다. 미래의 성장전망이 높을수록 투자 유인은 커지고 불확실성이 높거나 비용이 많아질수록 투자유인은 낮아진다. 기업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기업들이 미래 성장전망이 높은 투자처를 찾지 못했거나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상위 100대 기업의 지난 5년간 현금흐름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투자활동 현금유출은 2014년 크게 감소한 뒤 3년 동안 정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유출로 반전된 것으로 나타나 기업들이 자금조달보다는 부채상환에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기업은 차입을 통해 투자를 확대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우리 기업은 투자보다는 부채상환에 우선순위를 두는 모습이다. 저성장의 장기화, 불확실한 경제 상황 지속 등으로 기업들이 투자 축소, 부채상환 등 보수적인 경영으로 전환한 것이다.

현재와 같이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지속돼 반도체, 철강을 중심으로 수출 증가세가 유지된다면 기업이 다시 투자를 늘릴 것으로 기대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중국 등 후발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에 기댄 투자는 지속되기 어렵다. 또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적 충격이 있을 때마다 투자 급감과 성장잠재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투자 증가는 기업들로 하여금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고 혁신을 추진하게 할 유인을 부여해야 가능하다. 기업의 조세부담을 과도하게 높이고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산업 간 진입장벽을 높여 신산업 진출을 어렵게 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유인을 제약할 뿐이다.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새로운 산업과 다양한 고용형태가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현실과는 달리 20세기의 낡은 사고방식에 근거한 산업, 노동 규제 강화도 신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기업의 유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한다. 기업이 투자에 나서게 하려면 최소한 신산업 진출과 혁신에 장애가 되는 낡은 규제를 혁파하려는 정책적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규제 강화, 조세부담 강화, 노동시장 경직성 강화의 정책적 기조가 지속된다면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는 기업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송원근 <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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