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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해상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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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전쟁사(史)에서 해상봉쇄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 사례는 많다. 영국이 19세기 초 프랑스에 내린 해상봉쇄 조치가 대표적이다. 영국은 나폴레옹 1세의 침략 야욕을 꺾기 위해 막강한 해군력으로 프랑스 연안 도시 곳곳을 봉쇄했다.

교역에 차질을 빚어 경제적 큰 손실을 입은 나폴레옹은 1805년 영국 해군과 일전을 벌였다. 프랑스 해군은 트라팔가에서 허레이쇼 넬슨이 이끈 영국 해군에 참패했다. 이후 나폴레옹은 역으로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유럽 대륙을 점령한 그는 영국과의 무역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프랑스와 동맹국 항구에 기항하는 선박에서 영국산 물품이 발견되면 선박을 통째로 압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영국도 고통을 받았지만 프랑스와 동맹국들의 피해가 더 컸다. 제해권을 쥔 영국은 유럽에서 수입하던 물품을 다른 지역에서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에서 질좋은 제품을 수입해오던 프랑스와 동맹국들은 교역이 끊기자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특히 영국에 대량의 곡물을 수출하던 러시아의 불만이 컸다. 러시아는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해 영국에 곡물을 수출했다. 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불렀다. 나폴레옹은 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영국 해양봉쇄에 맞불로 내렸던 대륙봉쇄령이 나폴레옹 자신을 속박한 꼴이 됐다.

미국 남북전쟁 땐 북군이 남군에 대해 ‘아나콘다 작전’으로 불린 해상봉쇄를 해 큰 효과를 거뒀다. 북군은 우세한 해군력으로 남부연합의 해안선과 미시시피강을 비롯한 내륙의 주요 수로까지 점령했다. 남부군은 이로 인해 보급로가 수시로 끊겼고, 연합작전에도 지장을 받는 등 전쟁 수행에 큰 애를 먹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은 독일 해상봉쇄를 단행했다. 독일은 잠수함으로 맞섰다. 연합군의 군함과 상선을 가리지 않고 격침시켰고, 이는 미국의 참전을 불렀다. 미국이 1962년 옛 소련의 쿠바 미사일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단행한 쿠바 봉쇄도 성공적인 해상봉쇄 사례로 꼽힌다.

북한이 그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하자 미국에서 대북 해상봉쇄론이 거론되고 있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새로운 차원의 해상수송 차단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 차단이 제재 대상에 오른 북한 선박을 골라서 검색하는 수준이 될지, 공해상에서 모든 북한 선박을 검색하는 해상봉쇄가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해상봉쇄를 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필요하다. 관건은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다. 무엇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시키는 효과적 방안인지 중국과 러시아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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