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555.01

  • 1.14
  • 0.04%
코스닥

733.82

  • 9.24
  • 1.24%
1/3

[전문가 포럼] 규제가 유망 벤처를 해외로 몰아낸다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한국 규제 피해 미국 오라는 벤처투자자들
'규제 샌드박스' 등 말만 요란한 불임정책은
혁신기술로 승부하려는 벤처 발목 잡을뿐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지난주는 미국 실리콘밸리 출장 여독이 안 풀려 내내 고생했다. 이번 출장은 연구실에서 개발한 블록체인 기술을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에게 알리고 반응을 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곳 벤처기업 투자자 중에는 공대를 졸업하고 기술 분야에 근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꽤 많았다. 그래서 질문과 토론을 통해서 깊이 있는 기술적인 문제까지 검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몇 벤처기업 투자자를 만나본 필자로서는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만난 이들은 기술의 완성도 정도가 관심이고, 주로 출구전략과 이것이 잘 안 될 경우의 백업계획 등 투자와 관련된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반면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투자자들은 기술의 독창성과 시장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시장을 아는 투자자들은 토론을 하다가 필자가 보유한 기술에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제안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술의 가치를 알아주고, 또 상상력을 동원해 더 가치 있는 기술을 위해 토론할 수 있는 투자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실리콘밸리는 벤처기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지역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 과정에서 그들이 제안한 비즈니스 중에는 미국에서는 가능하지만 한국에서는 규제로 인해 할 수 없는 서비스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곳 사람들은 정보기술(IT)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그런 서비스들이 규제로 묶여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아예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 비즈니스를 할 의향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차피 시장이 큰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어서 사무실 하나쯤은 미국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내고 미국인을 더 많이 고용하는 미국 회사를 만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정부 규제란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핀테크(기술금융) 분야만 해도 기업가치가 500조원이 넘는 중국의 알리바바는 국내에서는 금산분리법 때문에 불가능한 기업 형태이고, 기업가치 16조원이 넘는 엑스페리온의 사업 모델은 개인정보보호법으로 꽉 막혀 있다. 또 기업가치 6조원의 킥스타터, 1조2000억원의 트랜스퍼와이즈, 얼마 전 가상화폐공개(ICO)를 통해 2억5000만달러를 모금한 파일코인 등의 사업모델 역시 한국에서는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구글이 제공하는 26개 주요 서비스 중 16개는 한국에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최근 한 세미나 주제발표자가 한 말도 귓가에 생생하다.

최근 정부는 규제 없이 일단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전 정부의 ‘규제 프리존’ 성격이다. 그러나 아직 기업들이 규제 샌드박스에서 규제의 굴레를 벗어나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고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행여 규제 샌드박스에서 할 수 있는 사항과 못하는 사항을 구분 짓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업들을 제한한다면, 이 또한 추가적인 규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의 젊은이나 도전적인 기업가들은 이 시간에도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을 개발해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좁은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을 상대로 뛰도록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 시장을 무대 삼아 꿈을 펼치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규제로 인해 할 수 없는 탓에 해외로 나간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국내 시장이 이들의 스파링 무대가 돼 충분한 경험을 쌓게 한 뒤 해외에 진출하도록 하는 것이 이치가 아닌가. 국내의 규제환경이 외국과 달라서 해외에서 사업을 하려면 아예 해외에서 창업하라는 ‘본 투 글로벌(born to global)’이란 말이 있기는 하다. 우리 젊은이들이 국내의 규제와 열악한 투자 환경 탓에 해외로 떠밀려 나가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절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