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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헤이스팅스 CEO의 '통큰 베팅'… 자체 콘텐츠에 80억달러 쏟아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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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 기업인이 이끈다

"넷플릭스는 잠과 경쟁"
DVD 무제한 대여로 시작
큰 성공 거뒀지만 "초고속 인터넷 시대 왔다" 과감한 변신 단행

창업 20년 만에 '글로벌 스트리밍 제국' 일궈
헤이스팅스 "투자는 타이밍, 역발상 필요"



[ 허란 기자 ]
“우리의 최대 경쟁자는 잠입니다.”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업체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가입자 1억 명 돌파 이후 특정 경쟁사가 아니라 잠과의 시간 경쟁을 선포했다. 이용자들이 더 많은 시간을 넷플릭스의 프로그램을 보는 데 쓰도록 하겠다는 담대한 선언이다. 이를 위해 2018년 업계 최대 투자 규모인 80억달러(약 8조9000억원)를 오리지널(자체 제작) 콘텐츠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지난해 최고 제작비(2억5000만달러)를 기록한 블록버스터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을 32편 제작할 수 있는 규모다.

타이밍 타이밍 타이밍

헤이스팅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통 큰 베팅을 결정한 것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노림수다. 과감한 콘텐츠 투자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탄력받기 시작한 아시아 유럽 시장에서 확고한 선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다. 놀라운 것은 헤이스팅스가 20년 전 맞춰놓은 시간표대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1997년 넷플릭스 창업 때부터 10년 주기의 3단계 성공 전략을 세웠다. DVD 대여 우편배송 사업으로 고객 기반을 다진 뒤(1단계) 미국 내 스트리밍 시장에서 성공하고(2단계)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3단계)는 구상이다. 창업 20주년을 맞은 올해 3단계 성공에 접어들었다. 2010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해외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190여 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헤이스팅스는 2007년 인터넷으로 드라마, 영화 등을 보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기 10년 전부터 스트리밍 시대가 올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가 충분히 빨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자 내부 반대에도 과감한 변화를 단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2년 기업공개 당시 1억5000만달러에 불과했던 넷플릭스 매출은 2007년 12억500만달러, 지난해 88억3000만달러로 불어났다. 헤이스팅스가 늘 강조하는 “베팅할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창업자는 반드시 역발상 필요

헤이스팅스는 남다른 시각으로 10년 뒤를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뚝심있게 밀고 나갔다. 헤이스팅스식 혁신의 요체다. 여기서 말하는 남다른 시각은 역발상(contrarian view)에 가깝다. 남들이 주식을 살 때 팔고, 팔 때 사는 투자자처럼 말이다. 그는 “창업자는 반드시 역발상을 해야 한다”며 “모두가 바보 같은 비즈니스라고 할 때 결국 성공할 것이란 확신을 품고 밀어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헤이스팅스가 상상하는 10년 뒤의 모습은 TV 방송 시스템이 사라지는 시대다. 헤이스팅스는 “TV 방송 시대는 2030년까지만 지속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TV 방송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도로 위에서 말과 마차를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스트리밍이 완전히 TV 방송을 대체할 것이란 얘기다.

헤이스팅스는 ‘제1원칙 사고’를 따른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했던 사고방식으로, 보통 일반 상식에 근거해 사고하는 것과 달리 문제의 근원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맹목적인 지시를 따르거나 기존 처리 과정을 고수하기보다 ‘무엇이 최선일까’ ‘다른 방법은 없나’를 끊임없이 자문하다 보면 문제의 본질을 파헤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은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와 닮았다.

헤이스팅스는 직원들에게도 제1원칙 사고를 강조한다. “당신이 생각할 때 회사를 위해 최선인 것을 해라. 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없다.”

변화를 줄이는 게 아니라 늘려야

헤이스팅스는 도전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키웠다. 196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보든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해병대에 자진입대했다. 평화봉사단으로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 있으면서 3년간 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그는 “몇푼 안 되는 돈을 들고 히치하이킹으로 아프리카를 가로질러본 사람에게 창업은 그리 큰 도전이 아니다”고 했다.

헤이스팅스는 1986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1991년 첫 회사 퓨어소프트웨어를 창업했다. 1997년 이 회사가 래셔널소프트웨어에 인수되면서 7500만달러를 받고 회사를 떠났다. 자기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창업한 회사가 넷플릭스다.

헤이스팅스가 비디오 연체료 때문에 열받아서 넷플릭스를 창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집에서 거리가 먼 비디오 대여점까지 직접 갔다오는 것도 억울한데 좀 늦었다고 40달러에 이르는 연체료까지 내야 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원하는 시간에 보고 반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낸 것이다. 인터넷을 뜻하는 ‘넷(Net)’과 영화를 뜻하는 ‘플릭스(flicks)’를 합쳐 지은 넷플릭스라는 이름에서도 그의 구상이 드러난다.

초기 넷플릭스 형태는 홈페이지에서 DVD 대여를 신청하고 우편으로 배송·반납하는 방식이었다. 1999년엔 넷플릭스 핵심 서비스인 월정액으로 DVD를 무제한 빌려보는 ‘회원제(subscription)’ 모델을 도입했다.

DVD 대여 서비스로 사세를 떨치던 2007년 헤이스팅스는 계획대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주력 사업모델을 바꾸는 것에 따른 위험 부담과 반발이 컸지만 변화를 주저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콘텐츠가 잇따라 성공하면서 기존 방송뿐만 아니라 유튜브까지 압도하며 인터넷 스트리밍 1위에 올랐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로 ‘큰 생각을 품고, 작게 시작해서, 크게 확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헤이스팅스는 기업이 혁신을 이끌기 위해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늘리는 방향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주가는 올 들어 60% 급증하며 200달러(10월16일)를 돌파했다. 덕분에 헤이스팅스도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400대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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