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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의 데스크 시각] 과거는 '다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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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지식사회부장


[ 백광엽 기자 ] 성군(聖君) 세종대왕은 냉정히 보면 흠결투성이다. 조선을 중화(中華) 질서 속으로 몰고간 원조가 세종이다. “중국 황제의 신하에 불과한데 어찌내가 ‘천제’를 지내겠느냐”며 수천년 이어져온 기우제를 중단할 만큼 철저한 사대였다. 세종은 ‘모(母)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라는 종천(從賤)법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부모 공히 노비일 때만 노비가 됐다. 종천법은 조선 인구의 30~40%를 노비로 전락시켰다. 고려 때의 10배 비중이다. 평민들에게 세종은 폭군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평등의 옹호자’ 링컨의 행보도 독재자를 연상시킨다. “연방 탈퇴는 악”이라며 의회 동의도 없이 남부를 침략했다. 참혹한 내전에 6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상계엄령도 선포해 1만3000여 명을 투옥했다. 전쟁 반대 신문사 수십 곳엔 군대를 보내 인쇄기를 파괴했다. 정당한 토지 보상을 요구하는 인디언 시위대 39명을 일시에 처형하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형 집행이었다.

세종과 링컨도 독재자일까

이런 허물에도 불구하고 세종과 링컨은 위대한 지도자로 불린다. 설명이 필요 없는 압도적 업적과 대의명분이 있어서다. 여러 실정은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며 양해할 수밖에 없다. 어떤 위인도 동시대를 초월하는 인식의 지평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하틀리는 ‘과거는 다른 나라(a foreign country)다’라고 갈파했다. 사고와 행동이 전혀 다른 외국처럼 과거도 ‘낯선 시공간’이라는 통찰이다. 과거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정의라는 평가를 받는 이 구절에서 세종과 링컨에 대한 숭배는 정당화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독재 논란에도 하틀리의 관점은 유효하다. ‘일본 육사 출신이니 친일파’라는 매도는 ‘다른 나라’에 대한 난폭한 이해다. 암울했던 시절, 식민지의 많은 청춘들은 선진 문물을 깨치고자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넜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 울분과 결기를 안고서…. 교편을 던지고 뒤늦게 ‘무(武)의 길’을 찾아나선 청년 박정희도 그랬다. 그의 선택은 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과 ‘대만 국부’ 장제스가 당대 최고의 군사대학 일본 육사를 택한 것과 대동소이하다.

쿠데타 평가 시에도 ‘다른 나라’라는 점이 고려 대상이다. 1946~1970년 사이에 59개국에서 229차례의 쿠데타가 터졌다. 2차 대전 종전으로 근대화 혁명에 대한 제3세계와 신생 독립국들의 열망이 폭발한 결과다. 절차의 비민주성에 관대한 분위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시대성 무시한 박정희 폄하

‘민족 활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최후 수단’이라며 장준하 선생이 5·16 쿠데타를 환영하고, 시민들이 차분하게 지지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물론 더 나은 길이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나라 수준에 맞게 다소 제한된 자유를 독재라 부를 수는 없다’던 앨빈 토플러에 대한 공감은 지금보다 광범위했다.

기껏 50년 전인 박정희 시대가 다른 나라일 수 있느냐고 말한다면 착각이다. ‘직접민주주의의 대명사’ 스위스에서 여성 참정권이 주어진 것이 1971년으로, 채 50년이 안 된다. 군사혁명이 터진 1961년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91달러로 아프리카 가봉 가나보다 낮았다.

박정희 반대파들이 평가해 마지않는 러시아 혁명도 따지자면 쿠데타다. 레닌은 2월 혁명으로 들어선 민주정부를 군대를 앞세워 볼셰비키로 대체했다.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혁명가 레닌 묘비에도 ‘우리 후손들은 훨씬 행복할 것이고, 잔혹했던 일들은 변호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백광엽 지식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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